삶의 여러 길 끝에서 다시 쓰는 첫 문장
어릴 적 나에게는 작가라는 꿈이 있었다.
돌잔치에서 연필을 잡았고,
다섯 살 무렵에는 동생 유모차를 밀어주며
동화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 말보다 글을 좋아했다.
우주의 별처럼 흩어진 생각들을
한데 모아 문장으로 만들 때 가장 행복했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쓰고, 글을 썼다.
얼마 전 서랍 속 추억 상자를 열어보니
상장이 30여 장 쏟아져 나왔다.
교내 산문 대회에서 시작해,
백일장과 전국 대회에서 금상을 받던 순간들까지.
그 빛바랜 종이들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글을 사랑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은
불안정과 가난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결국 화려한 하늘을 선택했고,
승무원이 되어 세계의 도시들을 떠돌았다.
돌아보면 그 길 위에서 만난 순간들은
모두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기내에서 스쳐간 승객들의 조각난 말들,
베이징의 아침 창밖의 분주한 자전거 바퀴 소리,
시드니 카페 창가에 비친 여유로운 한낮의 햇살,
사우디의 모래사막 위 별빛 아래서 느꼈던 고요,
낯선 언어가 리듬처럼 스며들던 베를린 거리의 공연,
새벽 공항 유리창에 겹쳐 비친 수많은 얼굴들까지
나는 늘 기록했고,
그 기록은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 믿었다.
승무원의 시간을 마친 뒤
나는 몸의 언어에 귀 기울였다.
호흡과 움직임, 감정과 근육,
마음과 몸의 연관성을 탐구하며
또 다른 문장을 발견했다.
몸이 인생을 담고 있듯,
글도 인생을 담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쓰기는 호흡과 같고, 마라톤과도 닮아 있다.
한 호흡 한 호흡,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이며
불필요한 힘과 생각들은 떨어져 나가고
끝내 남는 것은 단단한 생존력과 희망뿐이다.
이처럼 글쓰기도 군더더기를 덜어내며
마지막에 남는 본질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완성이라는 선물을 건넨다.
돌고 돌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처럼,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브런치는 내게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객석에 있던 나를 호명해 끌어올려
조명을 비춰주는 무대이다.
어린 시절 내가 원고지 위에 썼던 문장들.
그리고 비행을 하며 느꼈던 생각들.
나의 인생과 함께한 사유와 철학은
오늘 브런치 글 위에서 되살아난다.
이제 더 이상 상장과 메달을 얻는 것이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잊고 있던 감정을 흔들고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희망'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이다.
내가 써 내려가는 문장은
어쩌면 아주 작은 파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파동이 누군가의 내면에 닿아
희망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삶의 여러 길 끝에서 다시 돌아온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쓰는 문장은,
지나온 시간 위에 놓인 또 다른 이정표이자,
새로운 길의 서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