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멈추는 대신, 중심을 잡는 법
트라우마는 단순히 머릿속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몸의 기억이었다. 공포가 내 안을 지배할 때, 나의 첫 반응은 언제나 숨 멈춤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도망치던 그 순간처럼, 몸은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감추려는 방어 기제를 작동시켰다.
공포는 폐를 짓눌러 숨을 앗아가고, 근육을 경직시키며, 나를 얼어붙게 했다.
승무원 시절, 비상 훈련을 받으며 배웠던 호흡법과,
이후 몸의 언어를 탐구했던 필라테스와 명상공부가
이 두려움을 다스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뇌가 아닌 몸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라테스는 내게 ‘나의 몸은 나의 통제 하에 있다'는 절대적인 신뢰를 가르쳤다.
나는 항상 두려움에 웅크린 자세, 즉 어깨가 올라가고 목이 앞으로 빠지며 척추가 구부러진 도망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곧 나는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내 몸과 세상에 보내는 것과 같았다.
나는 필라테스를 통해 코어의 중요성을 배웠다. 몸의 중심인 코어가 단단해지자, 심리적인 중심도 함께 잡히기 시작했다.
강아지 앞에서 떨릴 때, 과거의 나는 몸을 웅크렸지만,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고르고 코어에 힘을 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었다. 나는 공포가 밀려올 때마다 길고 깊은 호흡을 연습했다.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참았다가 입으로 길게 내쉬는 과정은 단순히 산소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 나의 자율신경계, 특히 교감신경계를 스스로 통제하는 훈련이었다.
공포는 교감신경을 흥분시키지만, 길고 느린 호흡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몸의 긴장을 이완시켰다.
나는 강아지를 마주칠 때, 무서워하는 대신 ‘호흡을 멈추지 않는 것'을 나의 작은 승리로 정의했다.
이후 나는 명상과 러닝(마라톤)을 병행하며 몸의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명상은 호흡의 깊이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내면의 고요함을 찾게 해 주었고, 달리기는 두려움으로 경직되었던 몸을 다시금 '움직임의 기쁨'으로 채워주었다.
특히 러닝을 하면서 나는 두려움을 내 몸으로 통과시키는 경험을 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필라테스로 단련된 코어에 힘을 주고, 명상으로 배운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발이 땅에 닿는 규칙적인 충격과 심장이 뛰는 소리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 달리기는 나를 쫓아오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행위가 아니라, 공포를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적극적인 용기의 표현이었다.
두려움은 내 몸을 통해 나를 조종했지만, 나는 호흡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행위와 필라테스, 달리기를 통해 두려움의 주도권을 빼앗을 수 있었다. 호흡을 통한 자기 통제는 공포가 만들어낸 '피해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주도자'의 역할을 되찾게 해 주었다.
나는 더 이상 트라우마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몸의 언어가 바뀌자, 마음의 언어도 바뀌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나의 의지뿐 아니라, 몸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서 가능했다. 나는 나의 몸이 내게 보내는 숨 막힘이라는 경고를 살아 있음이라는 감사로 바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