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걷다, 그리고 껌을 밟다

끈적이는 불청객이 가져온 다정한 시간

by 장이엘

날이 따뜻해져 기분 좋게 맨발로 어싱을 시작했다.

햇살과 대지를 느끼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공원 세족대에서 물로 발을 씻는 중에

끈적하고 질긴 감각이 손과 발에 파고들었다.


발바닥에는 흙과 엉겨 붙은 껌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떼어내려 할수록 손마저 끈적였고,

세상에서 가장 불쾌한 민트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공원에서 글을 쓰려던 계획은 무너졌고

평온했던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슬리퍼에까지 옮겨 붙은 껌은

걸음마다 쩍쩍 소음을 뱉어내며 내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사람이 맨발로 껌을 밟는 일은 흔치 않은지

검색창엔 강아지 발바닥 처치법만 가득했다.

얼음, 베이킹소다, 기름등의 수많은 정보 사이를 헤매다

나는 클렌징 오일을 선택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오일을 듬뿍 바르고 발바닥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누가 씹던 것인지 껌은 지독하게 질겼고,

나는 한참을 그 끈적임과 씨름해야 했다.


엄지발가락부터 발가락 사이사이, 그리고 뒤꿈치까지.

껌을 녹여내기 위해 온 발바닥을 문지르던 노동의 손길은

어느덧 오랫동안 방치했던 내 발을 향한 마사지가 되어 있었다.


껌이 녹으며 원망도 함께 녹아내렸다.

결국 껌을 떼어내기 위해 클렌징 오일을 꺼내 들어야 했던 그 번거로운 과정조차,

돌아보니 나를 위한 새로운 지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부드러운 발이 있었다.

껌이 붙기 전보다 훨씬 말랑하고 매끄러워진 발뒤꿈치.

오일 마사지 후 로션을 바르니 비로소 생기가 도는 발바닥이 드러났다.


하루를 망쳤다는 원망의 문지름이,

결국 내 발의 해묵은 각질을 녹여내고 피부를 부드럽게 깨운 셈이다.


문득 깨닫는다.

세상에 '좋고 나쁨'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장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시련들이,

어쩌면 나를 다듬어주는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을.


오늘 껌을 밟지 않았다면

나는 내 발바닥의 거친 결을 이토록 다정하게 만져줄 일이 없었을 것이다.


사건 그 자체는 언제나 무색투명하다.

그 사건의 색은 내가 낀 안경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우리는 흔히 일을 좋고 나쁨으로 나누지만, 지나고 보면 그 구분은 분명하지 않다.

오늘 번거로움 하나가 나를 멈추게 했고,

그 덕분에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을 보게 했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것은 발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숙제를 기꺼이 즐거움으로 바꾸어 낸 더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나는 다시 가볍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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