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강남?

강남을 모르는 외국인 파일럿

by 장이엘

승무원 라운지, 공항, 호텔 혹은 브리핑 룸은

언제나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겉으로는 편안한 대화가 오가지만,

그 안에는 승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계층과 지위의 레이스가 숨어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텔에서

이륙 전의 스몰톡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때, 한국인 부기장이 강력한 카드를 꺼냈다.

마치 모두가 이 카드의 가치를 인정하리라

확신하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나는 강남에 살아. "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함께,

자신의 지위가 이 작은 공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유리의 무관심, 상징의 붕괴


그러나 이 자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무력하게 떨어졌다.

바로 러시아에서 온 기장, 유리(Yuri) 앞에서였다.

유리는 '진짜 부자'였다.

그의 연봉은 부기장과는 비교할 수 없었으며,

러시아 내에서의 그의 배경은 한국의 부동산 규모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묵직한 존재감과 함께,

굳이 자신의 부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특유의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부기장의 기나긴 자랑을 들은 유리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강남? 거기가 어디야? "

그의 물음은 시니컬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저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순수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이 부기장의 자부심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부기장은 테이블 위에 손을 얹고

서울 지도를 그리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It's below Han River. 한강 아래쪽이야.

The real rich people live there.

땅값이... the price is so high."


설명을 듣던 유리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국 부기장은 마지막 무기를 꺼냈다.


"Do you know ‘강남스타일? 싸이?’

That song! That’s from Gangnam!

You don't know that?"


'강남'이라는 단어가 "rich, " "expensive, "

그리고 '강남스타일 노래'까지 동원되어

해명되는 과정은 굴욕적이었다.


이 절박한 설명은 결국

"나 이만큼 잘난 사람이니 제발 인정해 줘"

라고 간청하는 행위처럼 보였다.


자신의 지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말로 구구절절 해명 할수록

그의 지위는 힘을 잃어갔다.


반면, 유리는 그 모든 설명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남겨진 통찰: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공인가


그 짧고 강렬했던 대화는

내게 깊은 통찰의 잔영을 남겼다.


내 마음속을 맴돌던 민망함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강남이라는 지위의 상징이

외국인 기장 때문에 무너지는 순간이 아니었다.


강남의 부동산 가치와 위상이

한 외국인 조종사 때문에 낮아질 리 만무하니.


진정한 충격은 다른 곳에서 왔다.

우리가 삶의 목표이자 정점으로 여기며

필사적으로 좇는 가치가,

단 한 걸음 국경 밖으로 나서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 없는 지역 정보가 될 수 있다는

냉정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내 환경 안에서만 통용되는 언어'였다.


그의 무관심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욕망이

지극히 지역적이고 한정된 맥락 안에서만 작동하는

'로컬 통화(Local Currency)'

혹은 지역화폐였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로컬 통화를 글로벌 엘리트 앞에서

필사적으로 환전하려 했던 부기장의 모습에서,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자화상을 보았다.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나 여유는

굳이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삶의 태도와 에너지에서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타인에게 '가장 비싼 곳'을 설명해야 하는 그 순간,

그 성공은 이미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허세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느낀 불편함은

부기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나 역시 그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각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Do you know 강남?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가?

이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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