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방직에도 낭만은 있다 5

공무원 못할 사주, 무관 사주

by 헤더양

“너는 관이 없는 사주야.

관이 없어서 나라의 녹을 먹을 사주는 아니야.

공무원은 아니란 거지.

또 여자한테 관이 뭔고 하면 남자야.

결혼 최대한 늦게 해. 빨리 하면 이혼해. “


한 30번쯤 들은 소리다.

관이 없는 사주. 무관 사주

공무원이 못 될 사주. 남자가 없는 사주.


사주와 타로 각종 미신에 큰 흥미가 있는 나로서는 귀가 닳도록 나를 따라다니는 예언이자 저주이다. 유명하다는 사주집은 모두 다녀보고 그것도 성에 안 차 명리학 책까지 사가며 공부도 해봤다.


공시생 시절에는 관이 없다며 겁을 주더니, 공무원이 되고 나선 조상 덕이 좋아 조상 관운을 끌어다 쓴 것이라 했다. 실제로 조상들 중 나라 녹을 먹은 사람이 꽤 되니 정말 끌어다 쓴 것일지도 모른다. 또 실제로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나왔으니 정말 관이 없는 사주일지도 모르겠다.


결혼도 늦게 하라더니, 정말로 무릅쓰고 결혼했다가는 의원면직 신청서를 제출했던 그날처럼 이혼소장을 들고 법원 앞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이십 대 초중반에는 서른 전에 결혼하면 이혼한다더니 서른을 앞두고 사주를 보러 가면 더 늦게 가란다.


예전에 신입 공무원 시절 팀장님과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팀장님과 주말에 사주를 보러 갔다고 하면 친구들은 너는 참 사회성도 좋다며 웃는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왜인고 하니, 우리 팀 공무직 주무관님이 최근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다녀왔다고 했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 어렸을 때부터 희한한 것들을 보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50이 넘어 어디서 나라 녹을 먹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어렸을 적부터 신을 받아야 한다는 걸 다 뿌리치고 직장을 다녔다고 한다. 이유 없이 몸이 계속 아파도 직장을 다닐란다며 꿋꿋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것이 친구의 따님한테까지 영향이 미쳐 따님이 계속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그 친구 분은 무언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의 사주나 타로를 봐주는 것으로 본인이 타고나신 운명을 풀어간다고 했다. 본인의 영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라 많이 보면 피곤해지셔서 유명해지기는 원치 않으신다고 했다.


이 모든 스토리텔링이 나와 팀장님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팀장님은 권위를 사용해서 그분의 연락처를 받아 냈다. 그 옆에서 나는 저도 인생이 답답하다며 보고 싶다고 괜스레 얼굴을 같이 들이댔다. 팀장님은 독실한 천주교셨다. 내가 성당을 다니는 조건으로 저 사주집에 같이 데려가시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조금은 웃긴 동행이 시작되었다. 주말에 팀장님과 나는 약속한 카페에서 만나 그분을 기다렸다. 그분의 지인이 하시는 카페라고 했다. 정말 공무원 같은 인상의 아주머니셨다.


그분의 점사는 신점 같다기보다는 오히려 사주풀이에 가까웠다. 팀장님은 팀장님이 보는 동안에는 나가 있으라고 하시더니 내 차례에는 나가시지 않고 자리를 지키셨다. 팀장님의 눈총을 무릅쓰고 이직할 수 있나요?를 물은 것 보면 그때부터 마음속에 의원면직 서류 한 장이 곱게 접혀있었나 보다.


이직은 니가 원한다면 할 것이다. 다만, 너는 끊임없이 뭔가를 쓰거나 그리거나 너를 세상에 표현해야 너가 살아진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썼고 그렸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쓴다.


그중에 또다시, 지긋지긋한 무관 사주에 대해 언급이 나왔다. 공무원 할 사주가 아닌데 조상 덕이 많다셨다. 결혼은 역시나 늦게 하란다, 일찍 가면 이혼할 것이라고.


며칠 후 팀장님과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에 그날 본 사주가 떠올라서 말했다. “팀장님 전 결혼 빨리 해버리고 싶어요. 일찍 하면 이혼한다던데 그런 거 안 믿어요.”


독실한 천주교인 팀장님이 말했다.

“너 내가 젊었을 때 사주 보러 다닌 얘기 했었나? 나도 어딜 가나 결혼 늦게 하라고 빨리 하면 이혼한다는 소리 들었어. 내가 26살에 결혼했지. 근데 지금 봐라? 나 이혼했잖아.” 처음 안 사실이었다.


“괜히 그때 그런 소리를 들어서 결혼 늦게 할 걸 후회 참 많이 했다 나. 너도 웬만해서 하지 말라 하면 하지 말고 살아. 괜히 마음에 밟혀. 이혼하고 나 정말 우울했잖니. 일이 자꾸만 안 풀려서 나 개명도 했어. 그래도 먹구름 낀 인생에 종교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이젠 든든해. 그러니까 너도 성당 다녀! “ 독실한 천주교인 팀장님이 말했다.


지방에서 특히 공무원 조직에서 체감하는 결혼 시기는 굉장히 이르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는데도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우르르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뭘 그리 서두르냐 싶다가도 이러다가 내가 갈 때쯤엔 멀쩡한 사람은 다 동이 나있을까 조바심이 난다. 그러다가도 지금껏 결혼 이야기가 나왔던 남자친구들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들로 헤어졌으니 이 또한 조상님이 도와주신 거라 속 편히 생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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