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방직에도 낭만은 있다 4

생활치료센터, 고독하구먼

by 헤더양

당시 우리 지자체는 각 부서에서 돌아가며 인원 한 명씩을 차출하여 일손이 부족한 생활치료센터에 로테이션으로 인력지원을 했었다.


우리 부서에서는 가장 잉여인력이었던 내가 가게 되었고 나의 불운한 일복 덕인지 나의 발령 결정과 동시에 우리 지역에서는 하루에 100명씩 확진자가 늘어났다.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던 그때, 생활치료센터에 지원인력으로 발령이 나게 된 것이다.


생활치료센터는 코로나 확진 진단을 받고 중증, 경증으로 판단되는 환자들을 격리시켜 의료 지원을 하는 곳이다. 이 지역으로 여행을 와서 진단 판정을 받아 바로 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도 생활치료센터로 배정되곤 했다.


그 당시 생활치료센터는 운영부, 시설부, 지원부, 생활부로 나뉘었다.

운영부에서는 생활치료센터의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시설부는 노후화되거나 망가진 시설들을 수리 보수하는 업무를 했다.

지원부에서는 새로 들어온 환자들에게 입소와 퇴소를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업무를 알 수 없는 생활부에 배정되었다. 예전에 ‘호텔리어’라는 드라마를 보며 호텔리어라는 직업을 잠시 꿈꿨었다. 자아실현의 기회였는지 생활부는 생활치료센터의 호텔리어 역할이었다.


나는 주로 퇴소 후 방을 청소하고 입소 전 필요한 물품들을 방에 세팅해 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입소자들에게 전달되는 택배들을 까본 후 반입 불가한 품목이 없는지 살펴서 방까지 가져다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 극단적 선택을 막고자 칼, 캔, 유리 등의 날카로운 물품들은 반입 금지였으며 화재 우려가 있는 라이터, 성냥이나 부패 우려가 있는 과일과 같은 음식들도 반입 금지되었다.)


문제는 당시가 굉장히 무더운 여름이었다는 것이고 비말 확산의 우려로 환자 퇴소 후에는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키지 않은 곳에서 방호복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로 위 업무들을 수행해야 했다는 것이다.


매일 숨 막히는 방호복을 입고 수 백호가 넘는 방에

깔개와 이불, 베개를 세팅하고, 물과 컵라면, 소독된 커피포트, 웰컴키트 등을 세팅한다.


원래 땀을 정말 안 흘리는 타입인데도

이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방호복 안으로 무릎까지 땀이 차서 찰랑거리는 게 느껴졌다.

방호용 마스크는 너무 꽉 끼어 가끔은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토할 것 같은 기분과 어지럼증에 헉헉댔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혹시 모를 감염과 확산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똑같이 시설 안에서 격리되었어야 했다.

매일 삼시세끼 똑같은 도시락에 입맛을 잃었고 아이스 바닐라 라테가 미친 듯이 그리웠다.

매일 땀 흘리며 육체노동을 하느라 평소에는 안 먹던 음식들이 너무 그리웠다.


그래서인지 7키로가 빠졌고 출소(?) 후 예뻐졌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인생사 장단점이 다 있다고 매일 땀을 빼고 곡기를 끊은 탓에 뜻하지 않게 외모의 리즈시절을 얻은 셈이다.


그 해 겨울 이유 없이 실신을 하게 돼서 이런저런 병원을 전전하다가 어느 한의원 선생님이 “기가 너무 허해요. 여름에 혹시 노가다 같은 거 했어요?”라는 질문에 놀라 40만 원어치 보약을 지어먹기도 했다.

생활치료센터에 매일 12시간씩 근무하며 받은 추가수당이 40만 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이 너무 그리웠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방호복을 입고 방을 세팅하고

사람과 이야기할 시간 없이 일하고 배정된 방으로 다시 격리되었다.


KTX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ENFP 같다는 나에게는 인간과 면대면 교류가 없는 이 삶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근무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숨을 죄여오는 고독감에 몸부림쳤다.

사람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소통이란 걸 하고 싶었다. 막 입소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안부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죽했으면 핸드폰 카메라를 켜놓고 혼자 문답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일주일쯤 지났었을 때였나 새벽에 방 안에서 혼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그리워~~~~~~~~~~”


생활치료센터에서의 나날들을 통해 배운 건

나는 사람 없이 못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MBTI 별 정말 안 맞는 직업에 대한 글을 봤었다. ENFP는 ‘외딴섬에서 일하는 말단 공무원‘이라던데 놀랍게도 내 상황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던가.


가끔 생활치료센터로 사용되던 건물을 지나갈 때면

매일 방호복 안에서 무릎까지 땀이 찰랑거리고

매일 방 안에서 눈물이 찰랑거리던

어리고 안쓰러운 ‘외딴 격리센터에서 일하는 말단 ENFP’였던 내가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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