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의 방역점검
유흥업소와 마찬가지로 집합금지의 직격타를 맞은 업종은 사우나와 목욕탕이었다.
지방에서 목욕탕은 일종의 동네 커뮤니티 역할을 한다. 우리 할머니의 서랍에는 늘 목욕탕 티켓이 몇 십장 있었다. 반장이 된 날, 학교 성적이 좋았던 날, 좋은 대학에 진학한 날, 경사가 있는 날에 할머니는 그 티켓 두 장을 쥐고 나를 나체의 사교장에 데뷔시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향수탕에 앉아있으면 어깨에 부항자국이 가득한 아주머니들이 “너 ㅇㅇ네 집 첫째 손녀구나? 너희 할미를 아주 빼닮았다”며 손에 미에로화이바나 바나나우유를 쥐어주시곤 했다.
목욕탕의 집합금지는 동네 커뮤니티의 무기한 종말을 선언했다.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맨몸의 영애들은 탕에서 과감히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혁명을 꾀했고 그렇게 목욕탕발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목욕탕 방역 점검은 유흥업소의 그것과는 또 다른 민망스러움이 있었다.
목욕탕의 기본적인 구조상 입구에 들어섬과 동시에 표를 끊는 데스크가 있고 실제 주 영업장인 욕탕까지 들어가려면 계단을 오르거나 탈의실을 지나쳐야 한다.
이 말인즉슨, 방역 점검이 불시에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먼저 방역 점검을 왔다고 데스크에 고지를 하고 주 영업장까지의 긴 여정을 거치면
데스크로부터 걸려온 비상전화에 탈의실의 이모님이 수화기를 두고 “마스크 쓰세요~~~”를 외치는 장면을 보기 십상이었다.
몇 번의 경험 후 우리는 어떠한 전략을 모색했는데
팀장님이 데스크에 점검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우리는 양말을 벗어 손에 쥐고 주 영업장으로 전력질주를 하곤 했다.
모두가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곳에서
정장과 공무원증이라는 격식을 둘러싸 매고
양말만은 적시지 않기 위해 손에 꼭 쥔 채로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던 내 모습을 인식할 때의 그 민망함이란..
다소 우스꽝스럽고 엽기적인 광경이었지만 처절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던 그때였다.
그 당시 방역점검은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당장의 거리두기와 같이 인원제한, 영업시간 제한도 부당한데 불쑥 영업장에 들어와 점검을 왔다고 이런저런 잔소리들을 늘어놓으니 당연스럽게 “너네가 해준 게 뭔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병아리 수습을 맞아주셨던 자영업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와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내가 죽기 전까지 전 세계에 이렇게까지 비상이 걸리는 상황이 또 올까?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모두가 겪어보지 못한 변화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호소했다.
이 질병은 나에게도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기억을 선물했다.
합격 후 원래 계획했던 해외여행은커녕 집 안에만 갇혀있어야 했을 때도
대학 졸업식이 학사모를 던져보기는커녕 비대면으로 끝나버렸을 때도
공무원 생활의 꽃이라는 입직연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동기들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해도
코로나 부서에 발령 나서 매일 민원전화를 받았을 때도 무사했던 나였다.
우리 지역에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던 그때, 생활치료센터에 지원인력으로 발령이 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