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방직에도 낭만은 있다 2

코로나와 유흥업소

by 헤더양

2021년 바야흐로 코로나 창궐의 시대,

코로나 담당 부서에서는 일분일초가 머다 하고 거리두기 정책을 문의하는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흥업소 종사자인데요. 혹시 요즘 자살하는 사람 없을까요…?”

마트에서 입고된 상품을 찾는 듯한 차분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내용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헤매던 와중이었다.


첫 출근과 동시에 아직 수습 신분이던 나는 코로나 부서에 배정되었다. 부서 전원의 모든 전화기에 불이 나듯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나도 열심히 전화를 당겨 받던 것이 화근이었다.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중앙부처의 거리두기 정책을 업데이트해서 숙지했다. 옆자리 주무관님들의 답변을 참고하며 예상 Q&A를 만들고 달달 외웠다. 답변하기 어려운 민원은 담당 주무관님이 좀 더 정확한 상담을 위해 다시 전화 주실 거라며 메모 남겨드리겠다고 전화를 끊는 요령 있는 수습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묻고 지금 거기로 찾아가서 칼로 찔러버린다는 협박성 전화도,

대통령님의 안부를 시작으로 화려한 쌍욕을 구사하는 취객 민원인도,

수화기를 타고 전해지는 짜증 섞인 목소리들도 익숙해질 때였다.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전 세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이 일시정지였다. 거기서 비롯한 분노와 절망은 당연했다. 태어나서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질병에 모두가 무력했고 무지했으며, 코로나 확산에 따른 명확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이곳 역시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제가 요즘 정말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요….”

이어서 수화기 반대편의 울먹임이 전해졌다. 나는 아직 이런 요령까지는 배우지 못한 수습직원이었다.


그 당시 코로나 부서는 근무자 1인당 슈퍼맨의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확진자 동선 관리부터 민원 상담, 방역 점검까지…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자체의 무능을 이야기했고, 그런 기사가 나간 날에는 더 많이, 더 오래 전화통을 붙잡아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됐던 건 유흥업소였다.

누군가는 농경의 등장과 함께 사냥꾼과 함께 인류 최초의 직업이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그 존재는 음지에 깊게 머물러 일상에서는 쉬이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분야였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지하에 진득이 기거하던 유흥업을 양지로 꺼내는 역할을 했다. 확진자 동선 추적 과정에서 유흥업소 출입 기록까지도 양지로 떠올라 매일 언론으로 재난문자로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유흥시설 집합금지로 유흥업소, 단란주점, 감성주점, 콜라텍, 헌팅포차, 홀덤펍에 집합금지가 내려졌고, 그 다양한 영업형태를 구분하는 기준까지도 양지로 올랐다.


간판으로 꺼놓고 불법으로 운영하다가 적발된 모 업장은 층층이 셔츠룸, 레깅스룸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셔츠? 레깅스? 일상복인 그게 대체 뭐가 어떻길래 층까지 구분되어 취급된단 말인가.


코로나 부서에서는 이러한 시설들에 집합금지가 잘 지켜지는지에 대하여 방역 점검을 불시에 진행해야 했다. 어색한 정장을 갖춰 입고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어린 주무관들이 가장 곤욕을 치르는 때이기도 했다. 각종 단속과 그에 수반되는 고성이 오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숙련된(?) 팀장 과장님이 앞장서셨고

그 뒤에서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생전 접해보지 못한 풍경들에 오갈 데 없는 시선을 감추기 위해 땅을 디딘 두 발에 감각에 집중하는 게 내 최선이었다.


어느 날은 방역점검을 나간 곳의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씨익 웃으며 빨갛고 반짝거리는 미니 원피스를 입은 종업원의 가슴께에 돈 만 원을 꽂아 넣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얼굴들이 길 가다가 한 번쯤은 본 듯 너무나도 친숙하여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공무원이 유흥업소에 출입했다가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의 남편이, 아빠가, 친숙한 얼굴을 한 누군가가 그곳에서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아내에게, 딸에게, 또다시 친숙한 얼굴을 한 누군가에게 전염시켰다.


“여보세요? 우선은 침착하시구요.”

무섭도록 침착한 수화기 너머 사람에게 아직 침착하기에 요령 없는 수습직원이 말했다. 이렇게 끊어버리면 내일 아침 그녀의 극단적 선택을 신문기사에서 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제가요 원래는 여기 사람이 아닌데요..”

그녀는 입을 뗐고 갑자기 살아온 인생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일대의 유흥가들에서 단속이 심해지자 주거지를 지방으로 옮겼다는 소문은 나도 익히 들었다. 그녀는 살해 협박을 당했던 이야기, 지금 사는 숙소에 바퀴벌레가 많다는 이야기, 초등학교 때의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아빠가 참 미웠다고 했다. 통화가 연결된 지 2시간이 흘렀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당황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오래 내려놓지 못하는 내 어깨를 쳐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전화를 요령껏 끊는 것도 요령이라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2시간 동안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이 수화기를 통해 흘렀다. 수화기 너머 그녀 역시도 친숙한 얼굴을 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통화를 끝낼 무렵 그녀는 후련하다며 자신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혹시라도 우울감이 생기신다면 한 번 전화해 보시라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마음 센터 번호 몇 개를 일러주며 앞으로 꼭 행복하시라는 말을 붙였다. 한 편으로는 요령 없는 내가 이 전화를 받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싸한 대답은 못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의욕 넘치던 신입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지금의 나였더라면 단박에 마음센터 번호를 일러주고 끊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사도 아니었고 당장에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없지 않나. 그렇게 2시간의 수화기를 붙잡는 동안 내 옆의 팀원들을 전화를 더 당겨 받아야 했고 누군가는 담당 부서와 전화 연결이 안 되어 속이 탔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떤 게 더 맞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의 2시간이 누군가에게 조금 더 살아가는 힘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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