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몇 년 전이던가, ‘좋좋소’라는 유튜브 콘텐츠가 큰 유행이었다. 중소기업의 멸칭인 ‘좆소’ 에서 자음 하나만 바꾼 제목으로 근무 환경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그렸다.
공무원, 그중에서도 쫄 중의 쫄이라는 지방직 공무원에게도 ‘좋방직(자체 순화)’이라는 멸칭이 붙곤 한다. 꽃다운 나이 26살부터 4년간 나는 지자체 본청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2021년 코로나를 시작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정책과 각종 민원들을 다양한 부서 다양한 업무로 맞이했던 것 같다.
올해 6월, 서른 살을 코 앞에 두고 나는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공무원을 떠난 MZ세대의 퇴사율에 일조한 셈이다.
퇴사하던 날은 오래간만에 미세먼지 한 점 없이 하늘이 파랗고 산들바람이 참 기분 좋게도 불었다. 반차 쓰기 딱 좋은 날씨네라고 생각하던 내 손에 쥐어있던 의원면직 서류가 참 생소하고 아이러니했다.
생일날 홧김에 여기저기 냈던 자소서 중 하나에서 갑작스럽게 서류 합격 문자가 왔고, 그렇게 필기, 1차 면접, 최종 면접에 얼떨결에 붙은 탓이었다. 사무실에서 확인한 최종 합격 창에 나는 몇 시간을 얼떨떨하게 합격취소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공무원만큼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4년간 정말 뭣같이도 굴렀는데 그렇게 쌓아놓은 나의 커리어를 버리고 가는 게 맞는 걸까?
소중한 철밥통 내 발로 내가 걷어차는 건 아닐까? 갑자기 세상이 망하고 기업들이 다 망하면 어쩌지?
내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가면 내 사업들을 앞으로 어쩌고? 팀원들한테 어떻게 말하지?
나 정말 이 직업에 애정과 보람을 가지고 일해왔는데…‘
별의별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앉아있던 나를 지나치며 차석 주사님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팀장님 얘 넋 나갔어요. 곧 큰 일 낼 것 같아요.“
그럴 의도는 아니셨겠지만 다행히도 내 상태를 정확하게 간파해 주신 차석 주사님 덕에 용기를 얻어 자리를 박차고 외쳤다.
“팀장님 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내 마지막 부서는 유명한 기피부서이자 격무부서였다. 인사이동 발표날 누구보다 빠르게 ctrl+F와 내 이름을 검색해 본 나는 좌절했다.
우리 본청의 꺼지지 않는 등대. 아무도 퇴근하지 못한다는 야근 감옥.
문화예술과.
예술적 소양이 깨나 박식한 유수의 감각 있는 주무관들이 머플러를 날리며 문화정책의 방향성을 토로해야 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들어가기만 하면 좀비가 되어 나온다는 주무관 한 명당 담당하는 보조사업이 6-70개는 우습다는 그 부서.
발령지를 받아 들고 눈물을 참고 있는 내게 인사팀 친구가 말했다.
“거긴 원래 성격 좋고 군말 없이 시키는 일 할 것 같은 애들이 가는 곳이야. 니가 일복이 좀 많니.”
그렇다. 수습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넌 참 일복 많다”는 말을 “너 참 쓸모 있다”는 칭찬으로 알아들은 까닭일까. 좀 더 유능하고 쓸모 있는 조직 구성원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원래 내가 할)일(도 가져가서 도우면서 베풀면 앞으로 살아가며) 복 많(이받을 것이)다”라는 복은커녕 짬 때리며 염원을 빌어주는 무림고수들의 권모술수에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조직이었다.
그럼에도 내 발로 나와보니 왜 사람들이 공무원 공무원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는 내 말에 공무원 친구들은 내게 “누가 나가라고 칼 들고 협박했니?”라며 장난 섞인 핀잔을 준다. 공무원이던 시절 ‘누칼협’이라는 신조어에 늘 뚜껑이 열려 열변을 토하던 나를 기억하던 친구들의 반격이다.
(누칼협: ‘누가 공무원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주로 공무원들의 적은 연봉과 높은 업무강도로 인한 고충을 비난할 때 조롱으로 자주 쓰이며
보람과 애정으로 근무하는 공무원에게는 사기와 의욕을 단박에 저하시키는 마법의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끔찍이도 갈려가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문득문득 고개를 쳐드는 건 참으로 애증이라 할 수밖에.
지금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다시 수습이라는 딱지를 달고 출근한다. 실제로 일복이란 게 있는 건지 새로운 회사에서도 나의 출근과 함께 유래 없이 내점고객 수가 많다고 한다. 내가 휴가를 쓰거나 교육 간 날에는 희한하게 한가하다는 억울한 증언들이 쏟아지는 걸 보니 실제로 일복을 몰고 다니는 건 내 쪽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