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와 승리를 동시에
대회장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서구 소속의 학교가 이렇게나 많은 줄 처음 알았다. 몸을 풀고 있는 선수, 장난치는 아이들. 진짜 대회장에 왔구나 하는 현실감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을 하면 나타나는 몇 가지 증상이 있는데, 소변이 계속 마렵다거나 헛구역질을 계속한다. 특히 헛구역질은 출발 직전까지도 나타나는데, 지금도 긴장되는 일이 있으면 헛구역질을 한다.
대회 시작 전 몸을 풀면서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르겠다. 뛰기도 전에 힘이 다 빠진 상태였다. 첫날 출전한 종목은 80m였는데 거리가 짧으니 실수라도 나오는 날에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긴장은 더 심해져 갔다. 정신을 차리고자 뺨도 때리고 허벅지도 때렸는데 아무 소용없었다.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로 소집 후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대회장을 들어가니 관중석에는 각 학교 지도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선생님과 부모님도 계셨다. 무슨 말을 하시는데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응원 메시지인 것 같다. 잠시 대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판 선생님이 호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달릴 레인으로 이동하여 스타트 블록 조정을 마치고 시작 신호를 기다린다. 이제 곧 나는 달린다.
“제자리에, 차렷, 땅!”
총소리와 함께 힘차게 달려 나갔다. 아무 생각 없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순식간에 골인 지점이 다가왔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골인하고자 몸을 날렸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오셨다.
“준결승 진출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긴장감이 풀림과 동시에 몰려오는 안도감.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오고 갔다. 예선전이었지만 인생 첫 육상 대회에서 이룬 첫 성과였다. 비록 준결승에서 떨어졌지만 아쉽지 않았다. 800m 종목이 남아 있었고,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달리기를 육상 선수로 대회에 출전한 것만 해도 나에게는 큰 행복이었다. 그렇게 처음 출전한 80m 종목이 끝나고 다음날에 열리는 800m 종목을 준비했다.
800m는 사실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짧은 거리만 뛰어왔고, 훈련 때 조깅으로 30분씩 뛰기는 했지만 이렇게 긴 거리를 빠르게 뛰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대감이 없어서였을까 크게 긴장도 하지 않았고 그냥 최선만 다 하자라는 편한 마음가짐으로 대회장을 들어섰다.
800m 종목은 5학년 형들과 같이 뛰었는데 주장 동우 형도 출전했다. 형들도 같이 뛰고 하니 순위권 경쟁은 못하겠다 생각한 나와는 달리 동우형은 많이 긴장된 상태였다. 얼굴도 하얘지고 불안한 모습이 가득했다. 같이 몸을 풀고 출발지로 향하는 길에 동호형이 힘내보자는 말을 했다. 긴장을 많이 한 탓일까 형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스파이크를 갈아 신고 심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각 레인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뜩이나 왜소한 체격이었는데 형들과 함께 서니 더욱 작아 보였다. 이윽고 총소리가 들리며 일제히 출발을 했다. 어차피 순위권과는 거리가 먼 나였기에 맨 뒤에서 쫓아가기만 했다. 동우형은 선두권에서 순위 다툼을 하고 있었다. 한 바퀴를 돌고 종소리가 울렸다. 선수들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쫓아가기 바빴다. 200m가 남았을 때였을까. 노란색 유니폼 입은 키 큰 선수 한 명이 냅다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렬로 줄이 만들어지면서 순위가 정해지는 듯했다. 나는 5위로 달리고 있었고 1위와 2위는 한참 앞에 있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던 찰나에 이상하게도 앞에 가고 있던 3위와 4위가 점점 나와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젖 먹던 힘까지 내며 팔을 더 크게 휘둘렀다. 순식간에 앞에 있던 두 명을 잡고 나는 얼떨결에 3위로 골인했다.
숨이 너무 차 골인 후 한참을 하늘을 보며 누워있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누워있는데 친구들이 다가와 환호를 질렀다. 동우형과 내가 각각 2위와 3위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고 입상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이 대회는 대구광역시 선발전 대회로 입상을 한 선수는 11월에 열리는 대구시 육상대회에 출전하는 참가권이 부여되는 대회였다. 몸이 회복이 될 때쯤 동호형이 다가와 수고했다고 했다. 입상을 한 것도 기뻤지만 동호형과 함께라서 더욱 기뻤다.
이 대회를 계기로 나는 단거리 종목에서 중거리 종목으로 바뀌었다. 체육 선생님도 앞으로 선수 생활을 계속할 거면 장거리 쪽이 적합해 보인다고 하셨다. 이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중·장거리 선수로 활동했다. 아마 800m보다 80m를 잘 뛰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까? 그렇게 나의 첫 대회는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