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다리 하나로 시작된 언어유희
2025년 어느 날,
오늘은 큰 딸이 휴무라 일찍 퇴근한 남편과 모처럼 집에서 한잔하기로 했다. 배민에 족발을 시키고 선물로 받은 30도의 베트남산 보드카를 개봉했다.
온 가족이 모여 오랜만에 가지는 술자리였다.
주님(알코올 주)을 사랑하는 남편과 큰 딸은 모처럼 알콩달콩 술잔을 기울였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작은 딸은 시원한 냉수를 마셨다. 한 모금만 마셔도 불타는 고구마가 되는 나는 와인 한 잔으로 분위기를 맞췄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익어갈 때쯤 남편이 간식 박스에서 숏다리를 꺼내왔다.
요즘 우리 집에서는 숏다리라는, 조금은 딱딱하고 조금은 질긴 오징어 간식이 인기다. 편의점에서 사서 먹기에는 가격이 비싸고 그나마 가격이 덜 비싼 쿠팡에서 다량으로 구매해 놓고 먹는다.
우리의 재미난 언어유희는 숏다리를 계기로 갑자기 시작되었다.
큰딸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 오징어 나오는 노래 있잖아~ 고래가 결혼하고 “
생각날 듯 말 듯 머릿속에서 제목이 맴돈다.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가
가랑잎 타고서 태평양 건너갈 적에
고래 아가씨 코끼리 아저씨 보고
첫눈에 반해 스리슬쩍 윙크했대요
당신은 육지 멋쟁이 나는 바다 예쁜이
천생연분 결혼 합시다 (어머 어머 어머)
예식장은 용궁 예식장 주례는 문어 아저씨
피아노는 오징어 예물은 조개껍데기
동요 <코끼리 아저씨>
고래 아가씨가 플러팅을 했다는 둥 오징어는 발로 피아노를 쳤다는 둥 큰딸이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렇게 코끼리 아저씨와 고래 아가씨의 결혼 스토리에 젖어들었다.
큰 딸이 노래를 모르는 듯한 작은 딸에게 말했다.
“넌 코끼리 아저씨가 가랑잎 타고 태평양 건너간 사실을 알았어? 몰랐어?”
작은 딸은 무표정으로 “응! 몰라”
"아니 고래 아가씨가 쓰리 살짝 윙크한 사실도 몰랐단 말이야?"
"응"
내가 한 수 거들었다.
"아니 아가씨가 왜 아저씨한테 윙크를 했데~"
내 머릿속 음란마귀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우린 코끼리 아저씨와 고래 아가씨의 연애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뭐야 그럼 재혼 가정이야?"
"아님 설마..... 내로남불??"
하하하하하 흐흐흐히히히키키키
재미있고 신나는 동요는 우리의 음주로 인해 변질되고 있었다.
"헉 예식장은 용궁 예식장이네 주례는 문어 아저씨래
넌 용궁 예식장은 가봤니?"
"아니"
큰 딸의 물음에 여전히 무표정으로 답하는 작은 딸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
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남편은 조용히 웃으며 여자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인다.
"가만 그럼 예도! 예도(예식 도우미)는 누구야?"
”난 해마를 추천해! 잘할 거야 “
"음.. 해마? 양쪽에 있으면 그림은 나오겠다.~"
큰 딸이 양팔을 뻗어 해마의 모양을 흉내는 모습이 가관이다.
푸하하 하하하 푸하하 하하하
"예식장 실장님은?, 이모님은? 플래너는?"
마치 우리가 코끼리 아저씨와 고래 아가씨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 마냥 예식 준비에 바빴다
나는 마음속으로 느꼈다.
이것이 행복이구나.
코끼리가 재혼을 하든 말든 숏다리만 뜯고 있는 남편, 손목을 구부리며 해마가 맞냐고 동생에게 강제 동의를 구하는 얼굴빛이 발그레한 큰 딸, "뭐야" 하는 눈빛으로 농담에 장단까지 맞춰주는 시크한 작은 딸.
1,440원의 오징어 숏다리가 불러다 준 행복 앞에
나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