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물이 빠져요.

“우리 때는 군복에서 초록색 물이 빠졌어요”

by 글쑴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온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딸만 둘인 나는 요즘 군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주위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가 전부다.


예전부터 군대 이야기는 많은 이슈를 몰고 다녔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군 복무를 한 남자들에게 주던 가산점부터 시작해 복무 기간이나 월급, 생활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이 매번 거론된다. 특히 군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사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여자들의 출산 이야기만큼이나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폭풍 수다의 재료로 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요즘 군 생활이 예전에 비해 많이 편해졌다고들 말한다. 힘들게 하나도 없다고. 하지만 이 역시 관점의 차이일 수 있다. 개인이 처음 겪는 일에 느끼는 두려움이나 어려움은 단순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수학 공식처럼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세대 간의 평가는 정말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군복이 참 멋져. 휴가 나온 우리 조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폼 나게 차려입고 나왔더라.”

“남편 군대 시절 사진만 봐도 군복이 정말 촌스러웠는데. 짙은 초록색 군복에 칼날 같이 잡힌 주름, 투박한 군화에 모자까지… 멋이라고는 전혀 없었지.”


휴가를 위해 모자부터 가방까지 다 샀다며 풀세트로 장착하고 나온 조카의 모습을 떠 올리며 친구에게 말했다.


AI 이미지로 만들어 본 예전의 군복과 지금의 군복


“요즘은 예전이랑 다르게 군대에서 다 구입할 수 있나 봐. 보급품도 있지만 PX에서도 살 수 있대.”

“군대에서 책도 사서 볼 수 있어. 우리 아들은 군대에서 공부를 하더라.”

“월급도 모으면 돈이 꽤 된다더라고.”

“겨울에 입는 깔깔이라는 옷도 정말 따뜻해. 퀄리티가 좋아.”


우리는 군대의 물품 이야기에서 시작해 생활, 월급 수준,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과 IT 기기의 편리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였다.


“제가 군대에 갔을 때는요, 군복에서 물이 빠졌어요.”


묵묵히 운전만 하시던 연세 지긋한 기사님이 대화 속에 들어오셨다.


“아~ 그러셨어요?”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옛날에는 천도 부족했고, 기술도 없고 질도 안 좋았어요. 비가 오면 군복에서 물이 빠져 허옇게 변했죠. 그래도 계속 입었어요. 우리 때는 복무 기간도 33개월이었고, 월급은 4~5천 원 받았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죠.”


기사님은 담담하게, 그러나 한 번에 쏟아내듯 말씀하셨다. 우리 대화를 듣고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으셨을까.


하사로 제대한 남편도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영웅담처럼 품고 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신이 나서 말이다. 선임이 훔쳐 갔다는 양말과 팬티 이야기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다. 선임에게 매일 기합 받던 일, 괴롭히면 괴롭히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참고 인내하며 그렇게 군 복무를 마쳤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삼키며 먹었다는 초코파이 이야기, 근무지가 해안 쪽이라 낙지와 생선을 실컷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수많은 일화가 있었지만, 물이 빠지는 군복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아마 군대 생활의 수준은 그렇게 조금씩,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었을 것이다.


기사님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데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대화는 그렇게 아쉽게 끝이 났다.


참!!! 그…

우리 남편 양말이랑 팬티 훔쳐 간 선임 군인 아저씨~

얼른 돌려주세요.

남편이 두고두고 이야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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