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라는 감옥에서 나를 꺼내준 말 한마디
아침에 먹고 온 청심환이 무색할 정도로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닦으며 몇 번이고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이제 낭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세요.”
작고 연약한 목소리가 스피커의 힘을 빌어 인문학 행사의 한 공간을 채웠다. 불안을 감추려고 몸에 힘을 주자, 말은 생각보다 흔들림 없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불안한 마음에 대본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한편으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이런 자리에 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독서 모임에서 시작된 인연은
나를 인문학 행사라는 자리로 이끌었다.
지적 호기심으로 참여했던 첫 해의 나는 말없이 행사를 돕는 작은 존재였다. 남들 앞에 서는 이들을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는 이 자리의 중심보다 가장자리가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게 두 번째 해, '낭송회 사회'라는 과분한 제안이 찾아왔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잘할 리가 없었다. 실수할 게 뻔했다. 그럼에도 해볼까 하는 작은 불씨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저는 이런 거 잘 못 해요. 해본 적도 없고요. 실수해서 망치면 어떡해요. 용기가 안 나요.”
옆에 계시던 목사님은 내 망설임을 꿰뚫어 보신 듯했다. 인자한 미소뒤의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셨다.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누구나 실수를 해요. 중요한 건 그저 경험해 보는 겁니다.”
뻔한 위로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주춤거리는 나에게 목사님은 뇌리에 박히는 마지막 한 마디를 던지셨다.
“그냥 ‘네 가지(싸가지)’ 없게 살아요. 뭐 어때? 실수 좀 하면 어때? 그런 마인드로 살면 되지요.”
점잖은 목사님을 통해 나온 ‘싸가지’라는 단어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착한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완벽하지 못하면서 완벽함을 바랐던 나의 오만과, 타인의 시선 속에 나를 방치했던 비겁함을 떨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싸가지 없게 살자.
조금 무례해 보여도 괜찮고
모두에게 착한 사람일 필요도 없었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실수 좀 하면 어때라는 그 배짱.
하고 싶은 마음 반, 두려움 반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두 번째 인문학 행사는 ‘완벽’이 아닌 ‘싸가지 없는 용기’로 시작되었다.
시간은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뿌옇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선명하게 내게로 왔다.
하얗던 머릿속은 어느덧
곱게 울려 퍼지는 문장들로 채워졌다.
처음 느꼈던 긴장은 봄눈 녹듯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서툰 그날의 마음에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