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크로키에 대하여
따스하고 부드러운 어둠이 짙은 그림자마저 희미하게 감싸 안을 무렵, 텅 빈 무대 위로 한 줄기 불빛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 궤적을 쫓아 숨을 죽인 채, 하얀 도화지 위에 머물던 시선을 떼어내 불빛 속을 바라보았다.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30초 간격으로 이어지는 모델의 몸짓과 실루엣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사람의 몸이 이처럼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아차렸을까.
도화지 위를 스치는 검은 연필의 움직임은 찰나의 감동을 전해 주었고, 동시에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편견을 부수는 연장이 되어 날카롭게 박혔다.
나는 독서라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나와 마주했다. 책을 읽으며 슬픔에 매몰되었던 나와 화해했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함께 도전과 좌절을 맛보며 환희의 순간을 내 삶의 가운데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내 안의 불안은 조금씩 퇴색되어 갔다.
“시민 기자 한 번 해보세요.”
“지역 동아리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시면 됩니다.”
“책도 읽으시고 글도 쓰시니 잘하실 거예요”
독서모임의 인연은 나를 또 다른 무대로 이끌었다. 정적인 무대에서 동적인 무대로, 사회자라는 자리에서 발로 뛰는 시민 기자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책을 읽고 토론을 거듭하는 동안, 내 안의 열정은 작은 불씨가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기자로서의 제안은 불안보다 호기심으로, 망설임보다 설렘으로 다가왔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은 채, 나는 새로운 경험의 문을 열었다.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캘리그래피 동아리를 만나 글에 생명을 부여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흙을 사랑하는 도시 농부를 만나 텃밭을 가꾸는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다.
시민 기자라는 이름은 나와 무관하다고 여겼던 화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볼 기회까지 선물해 주었다. ‘누드 크로키’에 참가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호기심보다 부끄러움이 먼저였다. 누드라는 단어가 주는 외설스러움과 타인의 벗은 몸을 여러 사람과 함께 바라본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현장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하자, 민망함이 먼저 밀려왔다.
“우리 민망해서 어쩌죠. 그냥 안 한다고 할까요?”
“전 부끄러워서 못하겠어요.”
“더군다나 참가자들 중에는 남자 화가도 있어요”
무대를 앞에 두고 주최 측 대표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동아리와 화가들에 대한 소개와 특별 참석자의 인사까지 차례로 흘러갔다. 시민 기자로 참석한 나를 소개하는 순서가 되었을 때, 왠지 모를 두근거림과 벅참이 밀려왔다.
태어나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내가, 이 순간 기자라는 타이틀로 소개된다는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자존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땡~~~ 땡~~~
종소리에 맞춰 모델의 동작이 수시로 바뀌었다. 재빨리 도화지에 선을 그었다. 30초의 시간은 너무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처음 연필을 쥐었을 때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모델의 몸짓이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놀림이 빨라졌다. 곡선을 그렸다. 부드러우면서도 완만한 굴곡의 선들을 도화지에 옮기기 시작했다.
서툰 선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편견이라는 껍데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수십 장의 그림은 낡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나의 부끄러움과 민망함, 그리고 부정적인 시선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웠고 이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그때의 선들이 담긴 묵직한 도화지의 무게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 손끝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