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진 자리
독서 모임이 시작되면서 자기소개서를 내라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엇이 궁금한 걸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일까. 자기소개서 한 장으로 사람을 규정지을 수 있을까. 난 내 삶이 누군가의 호기심으로 소비되는 것이 싫었다.
글 속에 갇힌 단편적인 모습이 내 첫인상으로 굳어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글쓰기는 늘 피로감이 먼저 밀려온다.
큼직하게 ‘결혼을 했고 딸이 둘 있으며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나를 세 줄로 정의했다. 하얀 여백이 많은 소개서는 제출하기가 꺼려질 만큼 휑했다.
취미가 되었든 배움이 되었든 공적인 만남에서 개인사를 말하지 않는 나는 어떤 형태로든 평가받는 게 싫었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책상 서랍 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적어둔 시 구절이 쌓여 있었다. 구르는 낙엽에 깔깔거리다 갑자기 밀려드는 쓸쓸함을 예쁜 문장으로 꾸미는 날도 많았다.
웃음 뒤에 슬픔을 감춘 채 문학소녀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역시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삐죽함이 없는 평평한 삶에 대한 생각들은 한동안 잊고 지냈음에도 결국 흔적처럼 남아있다.
그렇게 나를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했던 시기에 나는 글쓰기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독서모임 후기 공모전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상처를 준 것은 공모전이 아니었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담긴 글이 강사 한 사람에 의해 순위가 매겨졌다는 사실이었다.
손에 악보를 받아 들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오싹 돋는 소름에 즐거워했다.
시를 낭송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눈물 콧물을 찍어 내며 위로를 건넸다.
불안으로 움츠러들었던 나를 일으켜 세워준 수많은 응원과 토닥임까지 그 모든 시간들을 통째로 재단해 버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격리 중이었던 나는 몸도 마음도 바깥과 단절된 상태였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말은 나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열이 펄펄 끓고 있는 상황에서 모임에 직접 나갈 수도 없었고 왜냐고 묻을 수도 없었다.
남은 것은 숫자 하나였다. 그 숫자는 나의 가치를 평가한 성적표처럼 느껴졌다. 격리된 공간에서 홀로 그 결과를 마주했을 때, 내 안의 분노는 일렁이는 파도처럼 서서히, 하지만 거세게 번져갔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 모임 역시 경쟁을 전제로 한 자리가 아니었다. 공모전은 새로운 경험이라는 설렘으로 애초에 등수라는 개념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강사의 취향에 따라 평가된 거야”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고 다독거렸다. 하지만 이 말을 곱씹을수록 내 존재 가치가 타인에 의해 상처 입었다는 생각은 걷잡을 수 없게 커져만 갔다.
그때는 그랬다.
나의 글쓰기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즐겁고 기쁜 이야기로만 남았다. 감정의 글은 잔디를 깎듯 싹둑 잘라버리고 글에 안전장치를 달았다.
그때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글은 잘 썼어요. 하지만 재미가 없어요.”
“자기를 꺼내서 보여 주지 않는 글은 흥미가 없어요”
“인터뷰 글은 글쑴님의 글이 정석이예요. 하지만 인터뷰이에 대한 날것의 표현이 부족해요”
“만약 이 중에서 몇 년 안에 책을 낼 수 있다면 글쑴님일거예요”
글을 배우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 앞에 던져진 나는 상처가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만남은 어색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글벗이 생기고 나의 단어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얀 종이 위에서 춤을 추는 내 문장들을 발견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거칠지 않은 격식과 조심성을 갖춘 클래식과도 같은 잔잔한 나만의 문장을 만났다.
“어떤 글을 쓰시든 누군가에게는 와닿을 거예요”
“글을 평가하지 않아요”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돼요”
“글에는 정답이 없어요”
글을 쓰는 기술과 글이 주는 힘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은 글 그대로의 매력을 가진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진 자리는 단단한 살이 차 오른다. 나 역시 그랬다.
조금씩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괜히 그랬나 후회를 하면서도 나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감정의 끈을 하나씩 풀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주체할 수 없었던 그날의 상처마저도 이제는 이 글과 함께 서서히 희석되기 시작했다.
< 사진: 2021년 가평 화야산 출사길에 만난 흰 얼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