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을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심장은 점점 더 크게 쿵쾅거렸다.
버스는 막힘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머피의 법칙인가. 바쁘면 신호마다 빨간 불이 붙잡고 여유로우면 파란 불이 등을 떠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약국이 들어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히고 청심환을 주문했다.
“우황청심환은 환과 마시는 약 두 가지가 있어요”
“마시는 약이 효과가 좀 더 빨라요”
약사에게서 건네받은 상자를 순식간에 뜯었다. 작지만 오늘을 책임져줄 청심환을 음료수 마시듯 쭈욱 들이켰다.
한약처럼 쓴 맛이 먼저 느껴졌다. 그 뒤로 약간의 단 맛이 올라왔다. 약은 목구멍을 타고 온몸으로 조금씩 퍼져 갔다.
플라세보 효과인가.
아니면 처음이라 약발을 잘 받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기분이 묘했다. 심장의 쿵쾅거림도, 등줄기의 식은땀도 이제는 내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수업 재료를 들고 교실 문 앞에 섰다. 그곳은 중저음의 남학생들 목소리로 구석구석이 채워지고 있었다.
삐그덕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하나둘 자세를 고쳐 앉았다.
교탁에 서서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동그랗고 장난기 많은 얼굴.
코밑과 턱밑의 거뭇거뭇한 수염.
잔뜩 화가 나 있는 얼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얼굴.
책상에 엎드려 세상과 단절 중인 얼굴.
그 순간 청심환의 효과가 무색할 정도로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은 여느 때와는 달리 금방 사그라들었다.
“자 이번 시간에는 가죽으로 된 카드 지갑을 만들 거예요. 설명이 어렵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하세요 “
사투리 패스.
더듬거림 패스.
이제 절반의 강을 건넜다.
“선생님 이게 잘 안 되는데요”
“선생님 바늘이 안 들어가요”
“실이 안 당겨져요. 가죽이 울퉁불퉁해져요”
여기저기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불러주는 그 단어는 용기가 되어 나를 채워주었다.
오소소,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꿈만 같다.
말투에 상냥함이 묻어 있는 한 학생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도우미 역할을 자청했다.
“선생님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선생님 아이들은 제가 도울게요”
“선생님 저기 엎드려 있는 애는 깨우지 마세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항상 저래요”
수업은 별 탈 없이 잘 진행되었다.
남학생이지만 바늘을 넣었다 뺏다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미 지갑을 완성하고 서성이는 학생도 있었다. 장기판에 훈수 두는 할아버지처럼 친구들의 바느질에 훈수를 둔다.
딸이 아닌 아들이라는 어색함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딸들 못지않게 상냥하고 애교 있는 아들들이 있었다.
뉴스에서 보거나 흔히 말하는 무서운 십 대라는 느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바느질을 하는 순수한 모습의 십 대 남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지만 어색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귀동냥으로 들은 남자애들은 사춘기가 되면 말도 없고 반응도 없다고 했다. 눈은 늘 아래로 깔고 있고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거기에다 뉴스에서 본 아이들까지 떠올라 괜히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브런치 연재글
서툰 마음의 아카이브 제10화
‘어느새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중에서
학생들의 손에는 직접 만든 가죽 지갑이,
얼굴에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미소와 함께 번져 있었다.
교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코끝이 찡했다.
청심환의 약효가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