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튀어나온 사투리
가죽 공예 수업이 당장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제일 먼저 신경이 쓰인 건 말투였다.
”음… 학생 여러분 시작할게요 “
다시.
“학생 여러분 시작합니다”
“오늘은 가죽으로 카드 지갑을 만들 거예요”
“자 재료를 나나…? 아니 나누어 드릴게요”
시작부터가 어려웠다. 사투리도 불쑥 튀어나왔다. 이렇게 혼자서 연습하는 것도 부끄럽고 떨렸다. 거울에 비친 나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딸만 키워 온 내가 덩치 큰 남자아이들과 바느질 수업을 해야 한다는 건, 그 당시로는 삶의 큰 위기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지만 어색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귀동냥으로 들은 남자애들은 사춘기가 되면 말도 없고 반응도 없다고 했다. 눈은 늘 아래로 깔고 있고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거기에다 뉴스에서 본 아이들까지 떠올라 괜히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사투리를 쓰지 않고 표준어를 써야 하는데.
극존칭은 이상하고 반말은 안 되고
작업에 필요한 전문 용어도 있었다.
수업에 쓸 대본을 메모지에 빽빽하게 적었다.
그때는 표준말보다 사투리를 자주 쓰는 편이었다. 모임을 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는 본의 아니게 웃음을 줄 때가 있었다. 사실 이런 일들 때문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했다.
나는 부산에서 거의 30년을 살았다. 위쪽 지방으로 이사 온 지 그때가 15~16년쯤 지났을 무렵이었지만 경상도 특유의 억양과 사투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혹시라도 수업 시간에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봐 괜히 신경이 더 쓰였다.
도서관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강사의 공방으로 향했다. 어떤 날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조를 맞추어 방문했다.
공방 안 칸칸이 진열된 강사의 작품들은 마치 트로피처럼 빛나고 있었다. 다양하고 멋진 작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가르칠 가죽 공예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집중해야 했다. 특히 굵고 긴 바늘 두 개를 번갈아 써야 했고, 두껍고 질긴 실을 고르게 잘 당겨서 울지 않게 해야 했다. 가죽이라 바늘구멍을 기계로 미리 뚫어 놓긴 하지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우린 자투리 가죽에 연습을 하고 또 해서 감을 익혔다. 바느질과 가죽 마무리 작업까지 익히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수업 전 며칠 동안은 몹시 분주했다. 작품의 시간과 난이도를 고려한 몇 가지 공정은 미리 준비를 해야 했고 각 반에 들어갈 반 제품 포장도 해 두어야 했다.
다들 모여서 준비를 하는 모습이 비장했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들이 생생하다. 포장이 되어 있는 재료들을 보면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수업 하루 전날 두 딸을 앞에 앉혀 놓고 리허설을 했었다. 그날의 장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자 엄마가 시작할 테니 잘 들어줘 “
빼곡히 적힌 메모장을 손에 들고 최대한 상냥하게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에 가죽 공예 수업을 맡은 글쑴입니다.”
”우리가 만들 제품? 작품? 아니 가죽 지갑?….. “
두 딸의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표정마저 진지했었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자 오늘 수업은 가죽 카드 지갑입니다.”
“아니 만들기입니다.”
“이렇게 바늘을 직각으로 느어야 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들이 나의 사투리를 참다가 빵 터져버렸다.
“엄마 ‘느어야’가 뭐야~ 넣어야지”
딸들 앞이었지만 발음도 꼬이고 사투리도 튀어나왔다. 말을 더듬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딸들은 한참을 웃었다. 부끄러웠다.
“엄마! 엄마는 잘할 거야.”
“걱정하지 마.”
“사투리가 나오면 그냥 해.”
“애들이 더 재미있어할지도 몰라”
“난 선생님이 사투리를 쓰면 정겹고 좋던데”
남자 고등학생들과 함께 바느질 수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수업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청심환을 잊지 말고 사야겠다고 메모지에 빨간 펜으로 크게 적었다.
아침이다.
청심환의 효과를 은근히 기대하며 교문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