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꿈틀
선 하나를 긋는데도 지렁이가 기어가는 모양새다.
이번에는 일렁이는 물결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마침내 마음의 고요가 찾아왔다. 나쁘지 않다.
반질반질하게 깎은 나무 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부분은 거침없는 붓질로 내달렸다. 좁디좁은 골목길 같은 공간은 내 마음도 쪼그라들어 쉽지 않았다.
도안 위에 살포시 밑그림을 그렸다.
세필 붓으로 색을 입히고 선을 긋고 문양을 만들었다.
어느새 두 시간의 수업은 그렇게 긴장과 떨림,
안도감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돌아보면 그때만큼 나에게 집중한 시간이 있었을까 싶다. 그 시간들은 전업주부였던 나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돌파구였다.
아내로서의,
엄마로서의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몇 벌 되지도 않은 외출복이 걸려 있는 옷장이지만,
그 앞에 서서 옷을 고르는 시간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설렜다.
거울 앞에 앉아 연지 곤지 찍듯 단정히 화장을 하고, 전업주부가 아닌 나로 집을 나섰다.
10대의 이루지 못한 꿈을 꽃잎에 그리고
20대의 청춘을 줄기마다 담았다.
꽃이 완성될 때마다
나는 그때로 돌아가는 듯한 시간 속에 머물렀다.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어야 하나. “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그때만큼은 모든 생각을 내려놓았다.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했다.
그제야 비로소 온전한 ‘글쑴’으로서의 나를 만났다.
마지막 붓질을 끝내고 색이 스며드는 시간을 기다리며
수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믹스 커피 한 잔은 그 어떤 커피보다 달달하고 향긋했다.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며 하하 호호 웃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햇살 아래 소꿉놀이를 하는 꼬마들의 표정을 닮았다.
비뚤게 튀어나온 선을 보며
‘자기주장이 강한 선’이라고 칭찬하고,
번진 색들을 보며 속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멋지다고 웃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삶의 여유를 배웠다.
잘해야만 한다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나의 긴장과 불안도 그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한 번 더 미소 지었다.
새롭게 시작한 나를 위한 시간이 어느덧 기다림이 되고 사람들과의 어색함도 조금씩 옅어지던 어느 날,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강사님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원데이 클래스 강사가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학교에서 가죽 공예를 가르칠 30명의 강사가 필요합니다”
학교에서,
그것도 남학생들만 있는 남고에서 강의를 해야 한다니
딸만 둘을 키워온 나는 아들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떤 톤으로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앉았다.
동시에 공예를 배우는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쳐도 30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애써 모른 척했다.
하지만 강사와 제법 가까워진 그 시점에 나는 또다시 거절을 못한 채 커다란 짐을 어깨에 둘러메고 말았다.
사진 : 생활공예 시간에 만든 ‘포크 아트 나무 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