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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Oct 30. 2022

2. 그래서 채식 왜 하는데?

우리가 외면하고 살았던 진실


 내가 채식을 시작하고 지속하게  계기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설명을 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래서 도대체 채식  하는데?"

내가 채식을 결심하게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동물권이었다. 이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불쌍하고 안쓰럽고 그래서 못 먹겠다 그런 이유보다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마음이 컸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생생하게 쓰인 책을 읽을 땐 무차별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이 불쌍하다. 그렇지만 '동물들이 불쌍해서 안 먹어요.'라고 말하면 돌아올 따가운 시선들을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방어적인 이유를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동물을 먹기 위해 태어나게 하고 죽이는 게 당연하지 않았다. 젖소들은 1년 내내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강제 임신을 당한다. 수평아리는 생산 가치가 없으니 태어나면 바로 갈려 버리고 암탉들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혀서 눕지도 못한 채 서서 알만 낳는다. 그게 당연하지 않아지니 먹고 싶어지지도 않아졌다.

 

 나도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채식인들이 고기가 먹고 싶은데 참는 줄 알았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말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구워지는 삼겹살을 보면 새끼 돼지들이 생각이 났고, 우유를 보면 이건 내가 마셔야 할 게 아니라 송아지들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여태 나는 고기를 하나의 상품으로 본 것이었다. 동물의 사체가 아니라. 그것이 내가 외면했던 진실이었다. 두 개를 동일시하지 않으니 마음의 죄책감도 없었다. 나는 동물을 죽인 것이 아니라 맛있는 상품을 소비한 것뿐이니. 먹고 싶지 않아지는 마음이 너무나 신기했다. 마치 뇌가 '이건 내가 먹지 않는 종류의 것이야.'라고 분류한 것처럼 이전에는 정말 없어서 못 먹던 음식들이 이제는 하나의 모형과 같게 느껴졌다. '먹으면 안 돼.'라는 생각이 강해서일까 모양과 냄새, 맛이 비슷한 대체육을 보자니 거부감도 들었다. 내가 씹고 있는 것이 동물이 아닌데도 꼭 그런 것만 같아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4년 차인 지금은 정말 맛있는 대체육들을 먹으면서 고기를 끊은 데서 오는 허전함을 채우고 있다. 이제는 아는 것 같다.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이 모양과 냄새와 맛이 비슷해도 누구도 죽이지 않은 것이라는 걸.

 

 채식을 시작하고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은 채식이 환경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소와 돼지가 내뿜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의 온실가스의 18%라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인 것이다. 또한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옥수수가 16kg이 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소를 먹지 않으면 옥수수를 16배로 먹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채식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환경 보호에 지극히 관심이 많았다. 조금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 장바구니, 손수건 등등을 사용하면서 일회용품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려고 했고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배달보다 용기를 챙겨서 포장도 하는 다소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보다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 지구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땐 '아 진작 시작할걸 채식!' 그런 마음도 들었었다.

 

 어쨌든 누가 '나에게 채식 왜 시작했어?'라고 묻는다면 구구절절하게 말해주기보다 그냥 간단하게 말해주고 싶다. 안 할 이유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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