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가 채식, 식생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져 있는 좀 더 확장된 이야기예요. 넓은 의미의 비거니즘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동물을 착취해서 얻어지는 모든 것을 삶에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어느 날 슈퍼에 갔을 때였습니다. 채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먹을 수 있는 것,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느라 꽤 많은 에너지를 쏟던 때였죠.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서 처음으로 포장지의 뒷면에 쓰여 있는 알레르기 성분을 확인했습니다. 특별한 음식 알레르기가 없다 보니 평소엔 유심히 볼 일이 없었거든요. 온갖 고기가 함유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심정은 ‘아니, 여기에 고기가 들어간다고?’ 였죠. 마찬가지로 비거니즘을 지향하면서 살다 보면 그런 마음을 꽤 자주 느낍니다.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죠.
먼저, 이 정도는 흔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가죽입니다. 우리가 가공된 고기만큼이나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살았던 문제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옷이나 가방, 지갑 등 우리가 입고 쓰는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동물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면이나 폴리에스터가 주로 사용되는 얇은 여름옷을 살 땐 그나마 나은데 겨울 옷을 살 땐 흔하게 양모, 캐시미어 등이 쓰입니다. 동물성 원료를 피했다 하더라도 옷을 만드는 데에 환경이 많이 오염된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옷을 잘 안 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최대한 있는 옷을 입고 구제 옷을 사거나 주변에서 안 입는 옷을 나눔 받기도 하고 그래도 꼭 필요할 땐 동물 가죽이 아닌 소재의 제품을 사려고 노력합니다. 오리털 패딩이 아닌 웰론 패딩, 소가죽 가방이 아닌 합성피혁 가방을 사는 방법으로요. 선인장, 파인애플, 사과 등을 이용해서 만든 비건 가죽들도 있습니다. 동물의 가죽을 이용하긴 하지만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을 도살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가죽을 활용해서 만든 베지터블 가죽들도 있고요. 시중에서 흔하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따뜻하기 위해 한 생명이 죽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만 더 신경 쓸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동물성 식품이 아닌데도 비건들이 먹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꿀입니다. 꿀을 얻기 위해 벌들이 착취당하기 때문이지요. 벌은 지구에 없어선 안 될 가장 중요한 생물 종 5순위에 들 만큼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꿀을 대량으로 얻기 위해 여왕벌의 날개를 자르거나 벌들에게 꿀 대신 설탕물을 먹이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또한 비건들은 아보카도와 팜유도 지양합니다. 환경 파괴의 주범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보카도 열매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20L의 물이 필요합니다. 아보카도를 재배하기 위해 물이 이렇게 많이 필요하다 보니 농장 인근의 주민들은 식수가 부족해 트럭을 통해 식수를 공급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아보카도 농장을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산림을 훼손하다 보니 아보카도 최대 생산지인 멕시코에서는 계속해서 숲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팜유는 팜 나무(기름야자) 열매의 과육 기름으로 우리가 직접적으로 먹지는 않지만 2, 3차 가공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가공유지의 원료로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팜유의 최대 생산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팜유를 재배하기 위해 열대 우림을 불태우고 팜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열대 우림이 파괴되면서 그곳에서 살고 있던 오랑우탄들도 같이 사라지고 있으며 태우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탄소 배출도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술은 모두 비건일까요? 맥주나 와인의 경우는 대개 비건이 아닙니다. 맥주의 주원료는 보리와 홉, 와인의 주원료는 포도인데 여기야말로 동물성 성분이 들어갈 게 무엇이 있지 의아하실 겁니다. 맥주나 와인을 만드는 공정 중 발효하거나 거르는 과정에서 부레풀이 쓰입니다. 그래서 비건 인증 마크가 붙어 있는 맥주와 와인 등을 팔지요. 누룩을 주원료로 하는 막걸리에도 우유가 함유되는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약이나 영양제에서도 동물성 성분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연질 캡슐을 만들기 위해서는 돼지에서 얻은 젤라틴이 사용됩니다. 비건들이 비건 젤리를 먹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요. 효과가 좋아 자주 먹던 진통제도 연질 캡슐이라 더 이상 먹기 꺼려졌을 때의 심정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타블렛 형의 다른 약을 먹습니다. 오메가 3 같은 영양제에는 당연하게도 생선이, 대부분의 유산균에는 우유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비건들은 해조류에서 나온 원료를 바탕으로 하는 식물성 오메가 3나 쌀이나 식물 유래 성분을 원료로 하는 식물성 유산균을 찾아 먹어야 합니다.
마스카라의 유해성을 검사하는 방법으로 토끼에게 마스카라를 3천 번 이상 바르게 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그렇게 실험에 이용된 토끼들은 눈에서 피가 나거나 심할 경우 눈이 멀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제품을 인증하는 마크로 리핑 버니(Leaping Bunny)가 생겨났습니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에 이어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아 비건 인증을 받은 제품들도 이제는 드럭 스토어에서 꽤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기를 너무 사랑해서 먹지 않는 것이 어려운 분들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비건 제품들을 사용하면서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