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4.5점
“우리는 모두 내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화염이 제멋대로 뒤틀어 버리는 저 나뭇가지들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일반화하는 내가 틀렸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에 이미 아주 현명한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들의 현명함보다 내 지나간 광기가 더 마음에 든다.”
책 속에서 실비오가 한 말인데, 나는 이 문장이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실비오와 엘렌은 젊은 시절 충동적인 관계로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실비오에 의하면 그것은 단순한 ‘불장난’이 아니다. 엘렌은 그 당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역설적으로 이는 엘렌이 인생에서 한 모든 선택 중 가장 엘렌다운 선택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엘렌이 남편 프랑수아를 진정으로 사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범주에는 예상보다 많은 이성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재혼하기에 떳떳해 보이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조건적으로도 무난한 상대였기에 엘렌이 프랑수아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프랑수아와 정반대의 인물인 실비오 역시 엘렌은 사랑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사랑에는 여러 조건이 붙는다. 그 조건을 일정 부분 충족해야만 사회적으로 ‘올바른’ 사랑처럼 보인다. 만약 엘렌이 이성적 판단을 포함해 프랑수아를 더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라면, 오히려 이성을 배제한 선택이었던 실비오가 더 진실한 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비오에 대한 감정이 순수한 욕망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그 욕망에는 오롯이 자기 자신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성을 걷어낸 선택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능적인 욕망을 따르는 선택이 솔직하고 가치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선택의 주체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 생각은 비단 사랑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인생 전반으로 의미를 확장해 보면, 지금 돌아보았을 때 어리석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과거의 선택들이 오히려 그 당시의 나를 가장 잘 보여준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허황된 꿈들, 이를테면 모험가가 되어 세계를 여행하겠다는 막연한 다짐들은 성인이 되면 비현실적인 꿈으로 치부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 이성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회사에 다녀야 하니까, 결혼을 해야 하니까, 집을 사야 하니까,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이런 합리적인 이유들 속에서 ‘나다운 삶’은 점점 옅어지고 사회가 정해 놓은 평균적인 삶의 형태만 남는다. “언젠가”라는 말은 어쩌면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실비오는 엘렌과의 사랑과 청춘의 방황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나답게 살았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본능이 이끄는 선택이 때로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보다 더 나답고 후회 없는 삶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다. 어차피 우리는 100세, 아니 120세를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의 통념에 맞춰진 삶이 아니라, 내가 행복한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나는 내 삶에 후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