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너무 어려워
한시쯤 숙소에 들어왔다.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나는 어디 멀리 가기가 어렵다. 성산일출봉에서 카페를 다녀온 후, 조금 멀리 놀러가 보려고 버스를 타러 정거장에 갔다.
혼자 차 없이 국내 여행을 몇번 해봤던 터라, 이런 귀여운 정거장은 참 좋긴 하지만, 슬픈 배차 간격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려던 목적지까지 한시간 반이 걸리는데,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2시간이나 된다.
이러면 안되는데.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서 티 타임과 명산, 요가를 하기 위해서는 늦지 않게 돌아가야 했다.
어디를 가도 교통때문에 그 시간에는 숙소로 못 돌아갈 것 같아서 오후는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아참. 과일을 좀 샀다. 성산 근처에 아주 작은 하나로마트여서 물건이 많지 않았지만, 굴과 샤인머캣은 참 맛있었다. (두 박스를 하루 밤에 다 해치운 건 안 비밀)
뭐, 그렇게 숙소에 좀 일찍 돌아오니 방도 정리가 잘되어 있었고,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창문을 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웠다. 샤인 머스캣도 씻어 두도, 차도 내렸다.
저 샤인머스캣을 담은 그릇은 사실 다기를 데운 물을 버리는 용도인데, 뭐 샤인머스캣 좀 담아 먹어도 될 것 같아서 예쁘게 담아봤다.
풍경도 좋고, 파도 소리도 좋고, 차는 향긋하고, 샤인머스캣은 달콤했다.
하지만 외로움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불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 이렇게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걸까? 다도 시간까지 네시간 정도 남았는데, 이렇게 숙소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어도 되는걸까?
제주도까지 와서 방에만 있는 다는 게,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핸드폰으로, 남은 날들동안 뭘 하면 좋을지 검색을 해보았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지 않았다. 걱정이 됐다. 괜히 돈만 많이 쓰고, 너무 길에 여행을 잡은 건 아닌지, 무리한 건 아닌지, 이러다 내 우울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강박이었던 것 같다. 뭘 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웠다가 바꿨다가 반복을 하고, 가볼만한 곳이나 액티비티리 위치, 가격, 동선들을 생각하다 머리가 아팠다.
기분이 조금 쳐졌다. 그러다 시간이 돼서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다도실로 향했다. 기분이 저금 전환되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