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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파스텔 탐방기part.2

우울해서 그림을 그렸어

by 정좋아

요며칠은 또 기분이 처진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맘히 있는 게 힘들고, 편히 쉬기가 어렵다.


요며칠 쉬지않고 요가를 다녀왔다. 오늘도 원래는 밤 10시에 요가를 가려고 수업을 예약해 뒀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더 요가가 가기 싫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좀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계속 이사갈 집의 인테리어에 대해 고민했다. 그게 처음엔 기대가 되고, 즐거웠던 것 같은데 오늘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강박적인 수준에 이른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오늘 일곱 시간 이상 인테리어에 대해 생각하고, 오늘의 집을 둘러보고, 가구들을 찾아본 것 같다. 게다가 욕심은 많이 나는데, 집이 작아 공간의 제약도 있고, 예산의 한계도 있으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인지, 차마 요가를 하러 발걸음이 떼어지지도 않았다. 너무 해결하고 싶은 인테리어라는 과제가 있고, 지금 당장 이 과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해결이 안되고, 당분간은 계속 안될 것 같은 마음때문에 다른 활동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게 아닐까?


요가를 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 테이블의 오일파스텔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지친 것 같으니 몸 쓰지 말고, 앉아서 그림 좀 그려봐야 겠다 싶었다. 좋은 핑계(?)인 것 같아 마음을 굳혔다.


서점에서 간 책과 핀터레트를 뒤지며 그리고 싶은 것들을 찾아 따라 그렸다. 그리면서 잘 하고 있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망한 것 같다 싶은데, 또 막상 다 그리면 대충 봤을 때는 나쁘지 않게 그린 것 같아 흡족스로웠다. 재미도 있고, 자신감도 점점 붙다 보니,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두시간 동안 꼼짝도 안하고, 그림을 세개나 그렸다. 작은 그림이고, 난이도가 높은 것도 아니긴 하지만 신기했다. 일할 때 노트북, 쉴 때 핸드폰 화면 말고, 무언가를 이뤃게 몰입해서 쉬지 않고 바라본 게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물론 그림을 그리면서도, 쿠팡플레이로 SNL을 틀어놓고 귀로 듣고, 가끔 화면도 한번씩 쳐다보며 그림을 그리긴 했다. 하지만, 다른 생각들은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몰입이라는 걸 한 것 같다.


두시간을 그리고도, 더 그리고 싶었는데, 그것도 뭔가 강박이나 중독처럼 되어버릴 것 같아 억지로 멈추었다.

기분이 처저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다른 생각은 잘 안 나서 마음이 꽤 편했으나, 그림을 다 그리니 다시 기분은 처져있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한껏 집중해서 인지 피곤한데, 자기는 또 싫고,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건 없고. 참 어렵다.


나도 내가 어렵고, 요즘 정신과 약을 조금씩 바꾸고 있고, 일하는 환경도 조금 바뀌고, 새로운 취미 활동도 자꾸 하고 있고. 내가 괜찮아지고 있는 건지, 잘 흘러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그린 그림들은 많이 엉성해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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