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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파스텔 탐방기part.1

기대 만땅

by 정좋아

미술 학원에 등록을 해놓고 이래 저래 아직 한번도 수업에 못 갔다.


아쉬운 마음에 며칠 전 서점에서 사온 책을 보고 혼자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 보기 시작했다. 꽤 재미 있었다. 오일 파스텔이 물감보다 만만하긴 하지만, 그래도 재료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많이 칠하면 오히려 다시 색이 벗겨지고, 블렌딩하다가도 어떤 때는 색이 섞이지 않고 또 벗겨진다. 구름과 파도, 윤슬을 잘 표현해 보고 싶은데, 이 또한 이 대상들에 대한 이해와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대상을 이해해야 표현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꽤 걸리지만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오일 파스텔을 잘 다루고, 그림을 어느 정도 그릴 수 있게 되면, 뭘 그리면 좋을지 틈틈이 생각하곤 한다.


가장 먼저 생각했던 건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운 순간들, 남겨 두고 싶은 순간들이다. 그런 순간들을 떠올려 보기 위해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다. 지금 핸드폰 사진첩에는 대략 5년 전부터의 사진들이 들어있다. 꽤나 긴 시간이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시간이다. 많이 울고, 또 많이 웃었을텐데, 막상 사진을 뒤져보면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순간의 사진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패쓰.


그 다음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요가, 전통차, 블루베리. 언젠가 이것들을 내 스타일로 표현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요가를 하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서핑도. 서핑은 여러 이유로 포기하게 되었다. 나는 다음 생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서핑 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번 생에는 서핑 고수는 초기하고, 그림으로만큼은 높은 파도를 가르는 서퍼로 날 남겨 보고 싶다.


그리고 또, 가족을 그리고 싶다. 내가 가장 좋이하는 가족들과의 사진이 몇개가 있다. 하나는 엄마, 아빠가 프랑스 남부의 해변에서 돌이 아직 안된 나를 안고 찍은 사진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엄마, 아빠의 모습과 나에 대한 사랑이 왜인지 느껴져 보고 있으면 뭉클해지는 사진이다. 다른 하나는, 역시 돌이 안된 동생이 내 다리를 베고 누워 젖병으로 보리차를 마시는 사진이다. 단발 머리에 까무잡잡한 10살쯔음의 나와, 오동통통하고 새하얀 까까머리의 우량아 동생. 그냥 이 사진이 참 좋다. 마지막 하나는, 내가 중학생 때 유치원에 다니던 동생이 나를 끌어 안는 사진이다. 학교 생활과 엄마 아빠와의 갈등으로 아마 내 속이 썩어 문들어지고 있었을 때인데, 아마 동생과 있을 때 그런 스트레스가 많이 풀렸던 것 같다. 괴롭히고, 간지럽히고, 같이 닌텐도 위를 하고. 생각해 보면 저 사진을 찍었던 때 조금 뒤로, 동생과 점차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점점 공부에 시간을 많이 써야 했고, 수험 생활 기간이 길어졌고,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과 노느라 동생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그러다 동생이 사춘기가 되었고, 그후 이제는 어릴 때만큼 허물 없이 지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가족을 생각하면, 늘 먹먹하다. 고맙고, 미안하고, 안타깝다. 또,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가족들과의 사진도 그림으로 남기고 싶지만, 또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곱게 그려 주고 싶다. 그런데 언제의 모습을 그리는 게 좋을지는 아직 고민이다. 엄마, 아빠는 각자 언제의 모습으로 가장 많이 기억되고 싶을까. 언제의 자신의 모습을 가장 그리워 하고 있을까.


내 얼굴도 그리고 싶다. 아마 웃는 얼굴은 아닐 것 같고, 뭔가 고민을 하고 있는 음울한 표정의 옆모습을 그리고 싶다. 나는 내 정면 얼굴보다 옆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옆모습이 더 예쁜 것 같다. 정면은 자신이 없다. 음울한 모습을 그리는 건, 생각이 많은 내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아서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싶은 것들은 이렇게나 많다. 하나 하나 다 소중하고, 그리기 어려운 것들이다.


언젠가는 꼭 아름답게 이 소중한 대상들을 그려 내는 날이 오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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