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만 세팀
토요일 오전. 서로 다른 세개의 번호로 다섯번 전호가 왔다. 성가셨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오늘 집을 보러 오기로 한 부동산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난 절대 받지 않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저 사람은 누구일지, 무슨 얘기를 할지,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닌지. 혹은 상대가 하는 말에 내가 대답을 잘할 수 있을지.
중학교 1학년 때, 모르는 번호로 쌍욕과 비난으로 가득 찬 장문의 문자를 두번 받은 적이 있다. 나 너 학교 선배인데 못생긴 X가 스스로 예쁜 줄 아냐, 너 예쁜 척하고 셀카 싸이에 올린 거 토나와서 못 봐주겠다 그만해라 남자친구란 헤어져라 뭐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그때 놀라서 부모님께 말했고, 아빠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일이 커지는 것도 무서워서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다. 남자친구와도 바로 헤어졌다.
일이년 후였던가, 그 일의 자초지종에 대해 알게되었다. 당시 내가 막 사귀기 시작한 내 첫 남자친구가 사실은 A라는 여자아이와 사귀던 중 환승이별을 하고 나를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학교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 전혀 몰랐다. 아무튼 그 일로, A와, 또 그 남자친구가 이전에 사귄 무수히 많은 전여친들이 나를 요주의 인물로 삼고, 내 싸이월드도 들어와 보고, 내 욕을 여기 저기서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어느날은 학원 쉬는 시간에 같은 반 친구가 편의점에 다녀오더니, 다른 학교 일찐 여자애들이 내 욕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줬다. 그 나이에 담배를 피고, 여기 저기서 기강을 잡는 무서운 아이들이었다. 중학교 입학하고 종례 시간에 창문에서 내가 누구인지 창문에 매달려 구경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느날은 화장실에 있는데 한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길래 나라고 했더니, 일찐 무리 들어와 나를 둘러싸고 나를 비웃고, 가슴을 만지고, 쌍욕을 하며 조롱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욕을 먹고, 괴롭힘을 당했다.
문자 사건의 전말도 비슷한 맥락의 사건이었다. 환승 이별을 당한 A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나와 5학년 때 친구였던 B에게 내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번호를 바꿔서였는지 번호표시제한으로였는지 선배인 척하며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B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고,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엄마가 다른 친구 엄마에게 들었던 건지 아무튼 전해 들었다. B가 미안해 한다는 말도 어찌 어찌 전해 들었던 것 같긴 한데, B에 대한 배신감도 크긴 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을 흘리고 다니니 아마 놀라서 그렇게 나마 이야기를 전했던 것 같다.
나에게 그런 문자를 보낸 A와는 몇년 뒤 나무얼지 않은 척 말도 섞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은 그 친구는 일찐 부리들과 친하고, 무서운 일찐 친언니를 등 뒤에 엎고 있어서 나는 그냥 무서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으며 대했다. 한마디로 쫄았던 거다.
B와는 고등학교에서 다시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때는 또 참 친하게 지냈다. 문자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했다. 나한테 그런 문자를 보내 나를 불안에 떨게 한 그 아이가, 착한 얼굴로 대기업을 다니는 모습을 우연히 SNS로 보게 되었을 때 참 기분이… 묘했다. 내가 진 것 같았다. 내가 훨씬 더 좋은 대학을 나왔고, 괜찮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뭐 이런 생각도 들면서 억울했다.
아직도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꼭 이 일때문은 아니겠지만. 나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는 정말 받는 게 싫다.
오늘 전화들은 부동산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받기 싫었다. 목소리, 말투. 전화는 문자보다 신경 쓸 게 많다. 그게 부담이 된다. 기왕 전화를 하면 매너 있게, 상냥하게 하고 싶고, 그럴 수 없으면 문자로 하고 싶다.
가뜩이나 한 부동산에서도 두개의 다른 번호로 자꾸 연락이 와서 따로 따로 집 방문 약속을 잡는 것도 짜증나고, 부동산고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여서 토요일 오전에만 세 팀이 집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시간을 조율하고, 의사소통하는 것도 너무 성가셨다.
집 치우기도 바쁜데, 내 개인 일정 조율하고 지키기도 버거운데, 이 부동산 일정까지 계속 신경 쓰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죄송하긴 한데, 전화는 받지 않고, 문자로만 답했다.
쉽지 않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