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포기가 답일까
결혼해서 딱 두명의 아이를 낳아 오손 도손 살고 싶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중학교 때 혼돈의 시기를 겪으며,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진 뒤부터, 나는 항상 외로웠고, 외로움에 몸부림쳤다.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을 때 가족보다 더 가까운 대상으로 여기고, 의지하고, 기대게 되었고, 그러면서 상처도 많이 주고 받았다. 점차 상대에게 덜 의지하고, 덜 기대하는 법을 익혀온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항상 관계를 망쳐 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하나의 가정, 하나의 팀, 영원한 친구, 영원한 내 편을 꼭 만들고 싶었다. 같이 늙어가고,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고, 위로가 되어 주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또, 아이들도 꼭 낳고 싶었다. 아기들을 정말 좋아해서 인스타나 유튜브로 아기들을 보는 게 내 하루 중 가장 큰 낙과 위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엄청 빨리 하고 싶지는 않지만, 30대 초반에는 결혼을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늦어질 수록, 괜찮은 싱글인 남자들은 더 적어지고, 아이를 둘을 건강하게 낳으려면 늦지 않게 결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결혼에 대해 그렇게 급하게 생각해 오지는 않았는데, 29살 연말을 맞을 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 괜찮은 사람들은 빨리 품절되어 버릴텐데!
마음이 조급해져서 소개팅 앱을 시작하게 됐었다. 인증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외모 뿐만 아니라 집안, 직업, 학벌, 자산, 소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한 소개팅 앱이었다.
내가 속물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위에 나열한 저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만 꼭 찾아왔다. 공부, 학벌, 커리어에 대한 나만의 신념과 집착이 있어서 학벌, 직업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친가 식구들때문에 우리 가족이 평생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생하며 살았기 때문에 집안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모는 잘생긴 것까진 아니지만 내 눈에 귀엽고, 훈훈해 보여야 하고, 키도 작은 건 또 싫다.
문제는, 내가 성격에 대한 이상형 기준이 아직도 없다. 외적인 기준들을 저렇게 많이 늘어놓다 보니, 성격까지 조건으로 추가하면 더 누군가를 만나기도 어려워 질 것이기도 하고, 또 성격은 어찌저찌하면 맞출 수도 있고,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기도 하니까. (이런 생각은 좀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긴 했다. 여러번)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가지고 상대를 찾다 보니, 선택지 폭부터가 좁다. 그래서 소개팅 앱을 뒤져 보아도 내 마음에 차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있다한들, 그런 사람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할 확률도 높지만은 않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소개팅 앱으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주위에서 대단하다고 할 정도로, 강박적인 수준으로 열심히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겠지만, 많이 받기도 했고, 지치기도 했다.
그리고 앱 특성때문인지 익명 게시판에서는 30이 넘은 여자들을 깎아내리는 글들이 난무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글들의 영향을 받게 된 것 같다. 게시판을 안 보려고 해도 심심할 때는 그 게시판을 보면 뭔가 어떤 대화 속에 있는 듯 일시적인 연결감이 들어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그런 글들을 보게 된다.
’여자는 어리고, 예쁘고, 몸매 좋으면 된다‘
‘30 넘어간 여자는 가치가 없다’
이런 말들을 보면서, 저건 누군가의 생각일 뿐이고, 나는 저런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된다고 스스로 일깨워주곤 했으나, 조금씩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손에 꼽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던 사람들로부터 몇번 상처를 받고 최근엔 공황까지 이르게 되면서, 이제는 정말 지치고, 겁이 난다. 앱뿐만 아니라, 남자, 특히 내가 찾으려 했던 이상형의 남자에 대해서도 불신이 커졌다.
제주도에서 일주일 정도 혼자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지내는 동안, 나는 결심했다.
일단은 연애, 결혼에 더는 집착하지 않기로.
혼자서 행복하게 사는 법부터 터득하기로. 그냥 혼자서도 행복하기로.
인생이라는 게 늘 그랬듯, 내가 계획하거나 꿈꾸는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공부나 일처럼 나 혼자 잘하면 그래도 좀 길이 보이는 것들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그럼에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지금은 더 노력할 힘도 없고, 노력할 적당한 방법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내가 좀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건강해야 연애도 건강하게 하기 수월할 것이고, 연애고 뭐고 그냥 일단 내가 좀 어떻게든 살아야 겠다 싶었다.
혼자서 재밌게, 즐겁게 살고 싶다. 혼자든, 둘이든 좀 더 행복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혼자 즐겁게 지내다가, 운이 좋아 좋은 인연을 만나면 같이 즐겁게 지내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계속 혼자 즐겁게 지내면 된다.
그래서 최근에 혼자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을 많이 하고, 이것 저것 해보려 하고 있다. 아직은 모르지만, 이번엔 뭔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아이에 대한 꿈도 컸는데, 그것도 최근에는 고민이 된다. 단 한번도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던 나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며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이야 늘 힘들긴 하지만, 안 힘든 순간도 있고, 좋은 순간도 있고, 그걸 모두 살아가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공황 이후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도 나를 닮아 ADHD, 우울증, 공황을 가지고 살게 되면 어쩌지. 내 아이한테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최선을 다해도 나를 닮은 것만으로도 아이가 고통 속에서 살게 되면 어쩌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결혼과 자녀에 대한 꿈이 지금은 일단 많이 지워진 상태다. 결혼 안하고, 아이 안 낳고 혼자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꼭 결혼하고, 아이를 날아야 겠다는 강박(?)은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끊으려고 지웠던 소개팅 앱도 다시 깔고, 전보다는 줄었지만 가끔은 앱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나를 보면 아직 포기는 못했나보다 싶기는 하다. 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겁이 나는 건 사실이다. 이게 나를 보호하는 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