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가족과 말싸움을 하다
나는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진 못한다. 영어권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평소에 영어를 쓸 일도 없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는 문제 없다. 영어권에서 산 적 없는 것 치곤, 발음이나 억양도 영미권 스타일에 꽤나 근접해서 주변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근자감일지도)
그런데 공항에서 쉬던 중 누군가가 나에 대해 욕하는 말을 들어버렸다.
그때 나는 가족들의 짐과 그 짐이 올려진 자리 네개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다니느라 온 몸이 다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잠깐 짐이 올려진 자리 위에 누워 있었다.
“She is fucking taking 4 chairs.”
혼자 의자 네개를 차지하고 있다며 fucking이라는 단어를 썼다.
넋 놓고 있다 그 말도 흘려 들릴 뻔했는데,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나시를 입어 드러난 양쪽의 두툼한 두 팔은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고, 덩치도 컸고, 인상도 험악한 아저씨였다.
무섭긴 했는데, 내가 못 알아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상스럽게 내 얘기를 한 것 같아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자존심도 상한 것 같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fucking이면 우리나라 욕에서 제일 상스러운 욕에 해당하지 않나?
그래서 대꾸를 해버렸다.
“It’s for my family”
그러자 뭐라뭐라 아저씨가 궁시렁거렸는데 일단 못 알아들었지만 그 태도도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한국말로 “당신이 뭔 상관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Why do you care?” 표현력이 딸리다 보니 나름 정중하게(?) 말한 것 같다.
그러자 아저씨가 “I don’t care.”라고 답했다.
무섭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도 없고 해서그냥 뒤돌아 앉아 혼자 한국말로 “개x끼”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지금 뭐라고 했냐고 언성을 높였다. 지금 자기한테 “Fuck off”라고 한 거 들었다고 했다. 순간 당황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은 내 말을 알아 들은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저 말을 영어로 란 걸로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얘기했고, 그 사람은 아니라고 You did 이랬다.
아니라고하고 다시 등을 돌리고 앉았는데 너무 화가 나고, 또 쫄리기도 해서 한국말로 중얼대며 유튜브를 봤다. 그러다 가족들한테 상황에 대해 톡으로 대충 얘기를 했다.
아빠가 놀라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우리 아빠는 욱하는 성격이 있는데, 와서 막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져서는 그 남자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다. 그 남자도 뭐라 뭐라 했고, 그 옆에 그 여자 부인도 갑자기 우리 아빠에게 “너 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Fuck off라고 했어” 이러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런 적 없다고 하니꺼 여자는 아니라고, 너 그랬다고 자기가 들었다고 했다. 진짜 화가 났다. 내가 굳이 왜 영어로 욕을 하겠나. 그리고, Fuck off는 태어나서 써본 적도 없도, 뜻도 잘 모른다.
아무튼 아빠는 그때 이성을 차리고,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그만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아빠도 혼자 한국말로 중얼 중얼하며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등 뒤 쪽에 앉아있던 그 집 딸 여자아이가 갑자기 웃으며 자기 엄마에게 “Scary~ Scary~” 이러는 것이었다. 신경 끄고 있다가 그 모습만 딱 목격을 했는데, 그때는 정말 이성의 끈이 딱 놓아졌다. 우리 아빠는 영어를 꽤 하지만, 발음이나 억양이 아무래도 한국스럽고, 말도 더듬더듬하는데, 그래서 저렇게 조롱하나, 인종차별아니낙 싶어서 정말 발끈했다. 감히 내 앞에서 우리 아빠를 조롱해?
그 여자애를 보며 물었다.
“Funny?”
재밌냐고 묻고 싶었는데, 아마 제대로 말하려면 Is it fun이라고 해야했으려나.
여자애는 잘 못 알아들은 건지, “What?”이러며 눈을 크게 뜨고 소리지르며 화를 냈다. 뭐 영어로 뭐라 해야할지 바로 떠오르지도 않고 해서, 한국말로 쌍욕을 지껄였다ㅎㅎ 그러자 그 여자애가 나보고 영어로 말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권 사람도 아니고.
싫다고. 나는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러자 자기는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길래 그럼 한국어 배우라고 얘기해 줬다.
그냥 논리적으로 말하기에는 상대 반응도 그렇고, 내 영어 실력도 그렇고, 그냥 열 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단 것 같다. 나도 열 받았으니까.
그러자 양쪽 아빠들이 딸들을 말리기 시작했고, 나도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오해했다고 얘기하고 뒤 돌아서 아빠와 얘기를 했다.
여자애는 계속 짜증내며, 자기는 나한테 말한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시비 걸었다고 징징댔다. 그애 엄마 아빠는 계속 그 애 이름을 몇번이도 부르며 그만하라고 했고, 여자애는 내가 눈을 굴리면서 먼저 뭐라고 했다고 어쩌고 저쩌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작은 다툼은 마무리되었다.
그 뒤로도 그 여자애는 계속 나에 대해 뭐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 들었다. 나도 아빠와 그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 상황이 신기했고, 또 어찌보면 조금은 통쾌했다.
한편, 아빠는 싸움이 지속되길 원하지 않아서 자꾸 그 가족 중에 다른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인지 그 남자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아빠에게 자기는 아무것도 않았는데 왜 자기한테 그러냐고 정색을 하며 화를 냈다. 아빠는 당황해 했다. 그러면서 그냥 또 인자하게 웃으며 그집 아기를 보고, 아기가 피곤하겠다고 걱정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왜 웃냐고, 보라고 또 웃고 있지 않냐고 썩은 표정을 짓고 사라졌다.
그 상황에서 인자한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분위기를 풀으려고 노력하는 아빠가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굳이 웃을 상황도 아니고, 웃는다고 나아질 상황도 아닌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의 안위를 생각해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오히려 웃는 얼굴에 화만 더 얻어 아빠가 안쓰러웠다.
호주인들에 대한 인상이 다시 한번 안 좋아졌다.
자기네 언어를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스러운 언어를 섞어가며 상대를 비하하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아버지가 되어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것도 내가 동양인이라 무시를 한거였나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 만세.
아, 영어는 배워 두는 게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