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우는 삶

엄마의 고등어

by 제인


새삼 얼마나 좋아진 세상에 살고 있는가.

고등어조림을 먹고 치우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엄마는 고등어를 일일이 손질하고 양념해 어렵사리 요리해 주시곤 했다.

그런데 나는 가시가 나온다며, 비리다며 싫다고 한 입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던 철없는 딸이었다.


그때는 내가 엄마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까칠한 딸은 아니었을 텐데.

엄마가 힘들게 만든 고등어를 조금이라도 더 먹어줄걸.

괜스레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아침이다.


요즘은 방학이라 도통 해먹일 게 마땅치 않다.

같은 메뉴를 내어놓으면 아이는 밥 먹기를 거부한다.

삼시세끼를 고민하는 것이 엄마들의 주된 대화가 된 이유를 이제야 안다.


요즘 내가 많이 의지하는 건 생강간장고등어조림이다.

가시는 완벽히 발라져 있고, 진공 냉동 포장이라 전자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끝난다.

짭짤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고등어살은 내 입에도 맛있고, 아이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고마운 밥도둑이다.


어제 먹고 남은 콩나물밥 누룽지를 팔팔 끓여

고등어조림과 김치, 김을 내어놓으면

아이는 오물오물 웃으며 밥을 먹는다.

마치 “엄마 요리는 정말 훌륭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식탁을 치우며 생각한다.

김치는 캔에 든 볶음김치를 접시에 담았고,

짜쪼름한 명란김은 우리 집 단골 메뉴다.

내가 했다고 할 만한 요리는 어제 만든 콩나물밥이 전부인데, 그것마저 귀찮을 때가 많다.


내 식탁의 단조로움이 엄마의 식탁과 대비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올라온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던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김치냉장고도 없던 시절, 엄마는 해마다 김치 스무 포기를 혼자 담갔다.


내 도시락 반찬은 늘 볶음김치, 콩자반, 소시지였던 것 같다.

반찬 투정을 하던 나.

잘 먹지 않아 얼굴에 버짐이 피고 삐쩍 말랐던 학창 시절 내내 엄마의 골칫거리였겠지.

그런 나를 어떻게 참고 키우셨을까.

오늘따라 엄마가 새삼 훌륭하게 느껴진다.


세상 살기가 참 편해졌다.

집 앞에 세워둔 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더 편하고 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시대다.

간편 포장 요리는 내가 하는 요리보다 더 맛있고, 가격도 더 싸다.

이런 편리한 세상이 고등어조림 포장지를 치우며 새삼 와닿는다.


어린 시절, 마포에서 여의도까지 버스를 타고 놀러 다니던 기억이 자주 난다.

말 안 듣고 징징거리던 두 딸을 데리고

돗자리와 도시락을 한가득 들고

엄마는 한여름 피서처럼 여의도 한강 다리 밑으로 향했다.


냄새나던 한강물도,

그래도 강바람이라 집보다 시원했던 여의도 한강을

우리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한참 놀고 집에 돌아올 때면

버스비가 아까웠던 엄마는 우리에게 제안했다.

“버스비로 맛있는 거 사 먹고 걸어갈래?”


우리는 늘 맛있는 것을 선택했다.

손에 든 번데기를 하나씩 입에 넣으며

출렁이는 마포대교를 한참 걷다 보면

반쯤 왔을 즈음 후회가 밀려왔다.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던 우리.

그때 더 힘들었을 엄마의 얼굴이 이제야 떠오른다.

그 무거운 짐을 혼자 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나와 주던

용기 있는 엄마의 모습.


아이를 키워보니

그때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교차한다.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엄마가 한 일 중에 너희를 키운 것이 가장 보람찼다.

덕분에 행복했다.”


그 따뜻한 말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지금은 저 멀리 여행을 떠난 엄마에게

바쁘다는 이유로 추억조차 자주 꺼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늘에 인사를 건네본다.


잘 지내지, 엄마.

편안하게 있다가 나중에 만나.

나도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