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처음으로 쿠팡에 가다.
1.
그 겨울, 처음으로 쿠팡에 가다.
그 겨울, 남편에게 문제가 생겼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며 내 명의로 시작했던 일
처음엔 반전이겠거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소장이 날아오고,
독촉 전화가 울리고, 협박 문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분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다 같이 죽어버릴까도 생각했고,
저 인간을 죽여버릴까 상상하며
내가 미친 듯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평화롭게 돌보던 나의 시간은
그날로 끝이 났다.
두 달쯤 지났을까.
남편 얼굴만 봐도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주머니는 말라가고,
빚이 빚을 만드는 구조 속에서 내 속은 타들어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는 나날이었다.
내가 나가서 돈을 벌면 되잖아.
그런데 나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아이를 눈에서 한시도 뗄 수 없어
손발이 묶인 기분이었다.
답답해서 인터넷을 마구잡이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광고 하나.
쿠팡 CFS 일용직 단기직 모집.
설 연휴 일급 170,000원.
와.
그 돈이 그때 나에게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생각할 틈도 없이 신청해 버렸다.
설날 새벽 다섯 시,
귀신 나올 것 같은 캄캄한 시골길을 운전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한 첫 출근이었다.
아무 지식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 하나로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내가 배치된 곳은
쿠팡 물건이 나가는 마지막 분배 장소, 쿠팡 캠프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여자들은 잘 뽑지 않는다고 했다.
일이 워낙 거칠고 힘들어서.
큰 화물차에 가득 실린 택배를
하나하나 분리해 롤테이너에 차곡차곡 쌓는다.
다 쌓고 나면 그 큰 파란 롤테이너를
밀고, 당기고, 끌어 기사님들께 전달한다.
와… 정말 존나 힘들다.
여자 힘으로는 쉽지 않았다.
여자치고 힘이 센 편인데도 이건 차원이 달랐다.
남자들은 롤테이너를 세 개씩 밀고 다니는데
나는 겨우 하나, 많아야 두 개.
낑낑거리며 끌고 가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필살기를 꺼냈다.
재빠른 다리.
하나 하고 뛰어갔다 오고,
또 하나 하고 뛰어갔다 오고.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겨울,
온몸에 땀이 나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일은 너무 힘든데
심장은 두근두근 살아 있었다.
연휴라 차가 밀려 더 이상 택배차가 안 온다고 했다.
차가 들어오면 분배하고,
없으면 기다리고.
그런데 일이 없으니 쉬라고 했다.
완전 꿀잡인데도… 잠깐.
핸드폰도 안 터지고, 책도 없고,
그 좁고 남자 냄새나는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사무실 밖으로 무작정 나와버렸다.
숨이 이제야 쉬어지는 느낌이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들.
처음엔 큰 것부터 손으로 주웠다.
그러다 눈에 띈 빗자루를 들고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내 마음이 뭐라고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빗자루를 쓸수록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또다시 땀을 흘리며
그 넓은 창고를 돌아다니며 쓸고 또 쓸었다.
생각해 보면
억눌려 쌓였던 내 온갖 감정 쓰레기를
그때 함께 버려냈던 것 같다.
착하고 친절한 매니저와
툴툴대던 관리자가
“여기저기 구석구석 깨끗해졌다”며 넘버원과 함께 웃었다.
다시 오지 않겠냐고.
스카웃 제의까지 받아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몇 년 만에 무언가를 시작한 기분이었다.
심장은 여전히 뜨거웠다.
피땀 흘려 벌어온 나의 첫 일급.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겁쟁이가 아니라
당당하게 시작하는 내가
나는 참 멋지다고 느꼈다.
뭐든지 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