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by 하루살이

들어가며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 아니 에르노, 사건



부끄러운 경험에 대한 고백이다. 나는 30대 중반의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이다. 약 반년간 만남 어플을 사용했고,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했으며 몇 번의 오프라인 만남도 가졌다. 몇 번의 만남들 중 나를 사람으로 대해준 사람은 없었다. 짧지만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누군가와는 밤을 함께 보내기도 했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만남 어플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서 일종의 수모를 겪고도 끊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완전하게 끊어냈다. 라고 자신하기 힘든 상태이다.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찾지는 않지만 습관처럼 어플에 접속해 지역과 성별을 서울과 남자로 설정하고 스크롤을 내린다. 이 행동은 마치 숏폼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과 같아서 즉각적인 도파민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아마 여자의 경우에 더 그런 것 같지만- 여자는 어플에 접속하기만 해도 몇개의 혹은 수십 여개의 쪽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신체의 일부분을 확대한 사진을 프로필 메인으로 걸어두고, 나이와 성별을 기록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관심이 주어지다니!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즉각적인 관심이다.


나 또한 아마 그런 것들에 중독되어 갔던 듯 하다. 앞의 문장이 확신이 아니고 추측인 이유는,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아마 필자의 외모를 상상하게 될 것인데 웃긴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는 못생기지 않았다. 적당히 평범한 얼굴에 날씬한 체형을 가지고 있어 오프라인에서도 연애가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이십대 후반까지. 삼십대 초반을 넘어가며 나름 진심을 다했던 제법 긴 연애를 끝내고 나는 엄청난 불안감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멘탈이 무너졌고 그 외로움을 만남 어플로 해소하려는 가장 바보같은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하게 이별에 대한 하소연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말 그대로 낯선 사람에게 내 이별에 대해 시시콜콜 떠들고 싶었다.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가! 낯선 남자 사람이 낯선 여자 사람의 이별 얘기를 아무런 대가 없이 가만히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니. 이별 이야기를 나눌 동성 친구들이야 몇 있었지만 지난 연애의 반복되는 이별과 재회의 반복으로 주변 친구들은 내 연애를 지긋지긋해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 입장에서 전 애인의 이별 멘트에 대한 의도를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를 가지고 나는 제 발로 만남 어플이라는 진흙탕으로 들어갔다.


이 쯤에서 도대체 그 만남 어플이 뭔데? 라고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어플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겠다. 내가 사용한 어플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에 대한 철저한 익명성이다. 최초 가입시 사용자 인증을 위한 핸드폰 번호 등록 말고는 그 어떠한 정보 제공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용자는 나이도, 이름도 거주 지역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다. 심지어 본인의 성별 또한 임의로 설정할 수가 있다! 본인 또한 이 익명성에 기대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익명성은 많은 것을 자유롭게 한다. 나이가 쌓일 수록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많은 인간관계와 책임들이 우리를 피로하게 하는 순간이 있다. 보통 이런 경우에 정상의 사람들은 여행을 가거나 본인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그 피로도를 해소한다. 당시의 내가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필자의 직업 특성 상, 국내를 비롯해 해외 출장이 굉장히 잦은 직업이어서 여행이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주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싶다. 아무튼 당시의 나는 내가 선택한 만남 어플의 완전 무구한 익명성을 어떠한 선물이라고 느끼며 나의 부캐를 설정했다. 본명과 사는 지역을 상세하게 적을 필요가 없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