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

by 김헌준 Hearn Kim

정의 하자면, 心에 대상이 생겨날때 욕탐으로 心과 연결 되어 지속됨이 있는 그 무엇.

나는 일상의 삶에서 이러한 결박상태가 가장 폐해가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박을 心에 지니고 살던 지인들이 극기야는 자살에 이르는 경우를 직접 목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박은 스스로가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인간관계 라는 그물망에서 타인의 영향으로 결박이 형성 될 수도 있는데 나는 이러한 경우를 가장 증오한다.


기독교 복음서에도 예수가 이런 말씀을 한 경우가 있다. "이 연약한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그렇게 만든 그 자는 연자맷돌을 목에 달아 깊은 바다에 영원히 빠짐같은 죽음 만이 있을 뿐이니 이런 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라고.

오늘날 이 세상을 사는 많은사람들이 자신의 욕심과 이기적 목적을 위하여 타인을 절망에 빠뜨리는 악한 행위를 거침없이 행하는데 참으로 무지한 짓이다. 타인을 실족케 한 그 과보가 얼마나 큰 후과를 가져 올 지를 감히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붓다는 경전에 스스로가 만들거나 혹은 갖히게 된 '결박(Saṁyojana)'에 대하여, 이 결박상태와 이를 해체하고 빠져나오는 삶의 방법을 제시한다.

붓다는 결박상태의 시작을 '촉(觸)'으로 보았다. (12연기에서, ...육입-촉-수-애-취-유...)


"촉에 덮여 존재의 흐름을 따라가고 사도(邪道)를 실천하는 그들에게 결박(쌍요자나)의 사라짐은 멀다.

촉을 두루 알고서 ‘궁극의 앎’으로 평온을 즐기는 자들, 그들은 촉에 대한 현관(現觀)을 통해 만족한 자, 열반에 든 자가 된다." 라고.


觸이란, 자신의 안이비설신의(육내입처)가 밖으로 색성향미촉법(육외입처)을 만날 때 식이 개입하여 초래(연기)되는 상태로서, 우리가 현재(현실) 라고 느끼는 근거가 된다. 또한 촉으로 연기되는 동시적 현상이 '낙, 고, 非苦非樂' 이라는 세가지 受(느낌)가 동반한다고 한다. 그리고 붓다는 이 세가지 느낌이 모두 같은 '苦' 라고 한다. 느낀다는 본능 자체가 識이 개입된 苦 라는 것.


"‘안으로 그리고 밖으로’ 수(受)에 환희하지 않는 것, 이 같이 사띠(sati)를 가지고 유행하면 식(識)은 사라지는 것."


순간적으로 대상에 환호하면 붙들게 되고 좋은 것(낙)으로 받아드린다. 반대의 경우가 되면 '고'를 느낀다. 그러면 '非苦非樂'은? 바로 위에 인용한 문구가 참조가 된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은,


"만약 ‘낙이나 고나 비고비락’과 더불어 '안으로 그리고 밖으로’ 느껴진 것은 무엇이든 ‘이것은 고다’라고 알고서, 무너지는 허망한 법에 접촉할 때마다 이와 같이 소멸을 보는 그는 그것에 대해 이탐(離貪)한다. 수(受)들이 사라짐으로써 비구는 갈증이 없는 자, 열반에 든 자가 된다." 라고.


어느 불교도의 수행법을 소개하는, 결박상태를 위한 아주 좋은 문구가 있어 인용한다.


"결박은 ‘욕탐(chandarāga)을 야기 시키는 대상’에 대한 욕구(chanda)로 인해 마음이 묶이고 탐욕으로 오염되는을 말한다. 족쇄를 야기 시키는 대상 인 오온과 육내외입처에서 생기는 욕구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여러 수행법 가운데 에서도 특히 오온과 육내외입처를 관찰하는 법념처 수행이 효과적이다."


세상을 살면서 心에 그 어떤 속박도 두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 하기를 권고 드린다. 속박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은 사실 허상이다. 그 허상이 만들어 진 이유는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 가진 욕탐, 욕구, 헛된 희망 등등 것'. 그래서 그 대상들이 모두 '무너지는 法, 사라지는 法, 무상한 것, 고 인것, 무아 인 것' 이다. 그러한 허상을 제거하면 이 순간 그대들에게는 그 무엇도 그대들을 주장 하거나 지배 할 수 없다. 즉시 그대는 무한한 자유다.


이러한 사실에 눈뜨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예수의 말씀이 상기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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