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앞으로 지인이 되실 수 있는 한 분을 만나서 아주 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왜 귀한 대화인가? 상대와 내가 가진 이해의 영역이 같거나 거의 동일한 경우는 참 드물다. 겉으로는 다 동일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어떤 사람의 속은 내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누군가와 어떤 대화를 하고나서 공허함을 느끼거나 실망을 하곤한다. 그러나 우리가 속으로 가지고 있는 내용들이 동일한 가치관과 이론적 구조 내지는 사유의 근거가 공유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통해서 자신을 모습을 비추어 보는 듯한 효과를 체험하곤 한다.
불교라는 종교의 추종자들이 아닌, 순수하게 붓다의 말씀과 논지 만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만나 뵌 그분은, 과거 대학교수도 하셨고 불교관련 책자들도 번역과 출간하셨던 선생님으로 나 보다는 연륜이나 공부가 더 깊으신 분임에 틀림없으셨다. 그러나 나 보다 겸손하시고 사려 깊으신 모습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대화의 내용에도 신뢰와 확신이 넘쳤다고 느낀다. 나 역시 현재 내 공부의 좌표와 향후의 향방에 대해 다시금 조망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그리고 인간문명의 수천년의 사유의 바다에서 붓다가 던지신 화두 인 '法(담마)과 名色'이라는 개념을 앎이라는 차원에서 공유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붓다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名色이라 하며 사람들이 名色 만을 보기 때문에 괴로움과 고통의 삶을 경험 한다고 하였고, 더불어 名色이 아닌 法을 보도록 가르쳤다. 붓다처럼 마침내 諸法이 顯現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해탈이고 열반이며 이 삶에서 이루는 최종적인 목적지라고 하였다. 나도 그 선생님도 名色 만을 보는 상식세계의 삶에서 붓다의 法을 보는 삶으로의 여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서 더러는 名色이 무엇인지 혹은 法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계신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모르신다면 꼭 물어서 라도 아시기를 권 해 드린다.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의 사유의 영역을 경험 하실 것이며 어쩌면 삶의 제반의 문제와 한계를 해결 할 수 도 있다고 본다.
단지 여기서 간략한 힌트를 드린다면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이 세계를 名色으로 경험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識 때문이다. 따라서 名色은 반드시 識과 함께 고려해야 할 한 세트다. 그래서 識과 名色은 상호 호연연기를 한다고 본다. 어느 하나만을 고려하거나 집중 해서는 진정한 의미를 깨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識을 고려하지 못한체 세상을 名色 만으로 보기 때문에 중생은 괴로움과 고통과 한계에 처한다. 그래서 공부하는 단계에서는 '識+名色'으로 볼 수 있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진지한 공부의 한 꼭지점에서 이 識이 떨어져 나간다. 그랬을 때 이 名色이 法으로 전환되는 단계에 이르면 붓다 가르침의 한가운데로 들어 올 수 있다는 것. 이 삶이라는 소중한 인연에서 이 法을 꼭 만나 보시기를 권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