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身)이라는 현실상황

by 김헌준 Hearn Kim


흔히 우리는 이 '몸'이 한자로 쓰는 '身'과 같다고 간주하며 산다. 그런데 이 身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우리 삶의 현실상황을 말해 준다. 나는 이것을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알게 되었다.

동시에 붓다의 모든 가르침이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아니라 철저히 우리의 현실에서 당면하는 실제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통찰하는 자적들 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우선 상윳다니까야에 身과 관련한 한 부분을 보고 이야기 해 보겠다.

"비구들이여, 이 身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니다. 비구들이여, 身(kāya)은 이전의 업(kamma)으로 결합된 것(abhisaṅkhata)이며, 의도된 것(abhisañcetayita)이고, 受를 받는 것(vedanīya)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聖弟子는 緣起의 이치를 듣고서 올바르게 作意한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生起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없다고 한다면 저것도 없으며,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滅한다. 곧 無明을 緣한 行, ……' "

[SN. vol.2. pp.64~65]


상기 법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身이라는 것이 내 것도 아니며 동시에 어느 누가(예를 들어 神에 의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현재 이 身이라는 것이 이렇게 있는가?'를 말 해 주고 있다. 이 身은 연기작용에 의해 현재 이렇게 벌어져 있는 현실상황이라는 것.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업보가 드러난 것. 의도 된 것. (즉 心에 계속 잠재시켰던 그 모든 것들을 '생각작용-作意'의 결과). 항상 느낌이 일어나는 물리적 상태. 이러한 자의든 타의든 간에 흘러 온 복합적인 경험의 산물이 현재의 상태를 결정 짓는다는 것이 緣起. 예를들면 '12연기설'이 보여주는 '무명→行들→식→명색→육입....' 이러한 흐름들이다.


다른 경문을 하나 더 참조하면,

"그와 같이 비구의 心이 三昧에 들어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기차고, 안정되고, 不動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心을 앎과 봄으로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알아낸다. '이 身은 色을 지니고 四大로 되었으며, 부모에게서 생겨났으며, 밥과 죽으로 집적되어 무상하고, 파괴되며,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인데, 그런데 나의 識은 여기에 의존하고 여기에 묶여있다.' 이것 역시 그의 般若에 속한다."

[DN. vol.1. pp.208~209]


반야라는 지혜(앎)는 이 身을 바로 아는데 있다는 것이 붓다의 지적이다. 이 한계적인 상태의 身에 우리가 心이다 또는 識이다고 하는 것들이 메여 있으므로 결국 身을 바르게 먼저 알야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라 보여진다.


연기작용이라는 자연법칙에 의해 나라는 존재로 착각하는 身이 생겨나는 과정. 생존의 치열한 진화과정 속에 쌓이고 쌓인 뭉쳐진 물질들의 지향점은 현재적 필요에 의해 파생된 정신작용(心이라 이름하는)으로 인해서 또다른 물질적 변역이 일어남에 따라 또 다른 정신적 작용들이 일어나고 하는 연쇄적인 흐름이 연기작용에 불과한 것이므로 결국 이 身이라고 이름하는 상태는 "무상하고, 파괴되며,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는 것"이라는 지적.


따라서, '나의 것도 남의 것도 아닌' 자연현상이 현재의 '자신'이므로, 무엇을 보든 느끼던 알게되던 의도되던 '나'라고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붓다의 가르침 인 것이다. 그래서, 이 현실에서 무엇을 당면하든, 그냥 '알아지는데로 되어지는데로 쳐해지는데로' 일 뿐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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