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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ie Sep 18. 2023

소소한 사람들의 뉴욕

시간의 공백에 익명의 광장에서 숨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시작했다.

울며불며 어쨌든 학교와 어린이집을 가고 나면

몇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지하철도 끊긴 외로운 섬에 고립되어 사는 전업주부로서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

막내를 들여보내자마자 맨해튼 한복판으로 뛰어나왔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사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가야만 하는 곳이 곧 가고 싶은 곳으로 살았던 사람에게

의무가 없는 공간을 향해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


가만가만 산책하기에는 이 도시는 너무나 거칠고 빠르다.

어딘가 들어가 앉아 커피 한 잔 하려고 해도

비싼 가격과 팁이 나를 계속 머뭇거리게 한다.


고용주를 위해 하루를 성실히 불태우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40대에게는

이 시간의 공백이 부끄럽고 두렵다.


결국 자리 잡은 곳은 공원

뉴욕에 온 지 이제 겨우 두 달 째지만 수도 없이 온

브라이언트 파크

쫓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도망친 나는

익명의 공원으로 숨어들었다.

간밤에 내린 비로 젖은 의자여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런데

공원 이쪽저쪽에 나 같은 이들이 가만가만

평일 오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그저 소소하게 존재하고 있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뉴욕  

끝없이 돌아가는 지구의 움직임 속에

마치 나무처럼, 꽃처럼, 잔디처럼

나와 그들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처음 느껴보는 온전한 나.


시간의 공백 속에서

소소한 도시 뉴욕과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흩날리는 새로운 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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