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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ie Sep 22. 2023

우리는 모두 집이 그립다.

Chicanos Invade New York series

뉴욕 5th Avenue에는 Global Big Tech나

거대 투자 회사의 HQ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규모의

도서관이 있다.

Stavros Niarchos Foundation Library.


그 도서관 1층 한 켠에 매주 2번

English Conversation Hour가 열린다

작정하고 공부하자는 영어 수업도 아니다.

발음이나 문법을 교정해 주는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영어로 누군가와 떠들려고 모인다.

English conversation hour가 열리는 도서관 1층 한 켠


도서관은 본인들 예약 시스템을 통해 참석자들을 받고,  

국적이나 인종을 적절히 배분해 자리에 앉혀주는 게 끝이다.

네댓 명 정도로 나뉘는 소그룹에 좌장 역할을 하는 이들도

똑같이 Converstion Hour에 참여하러 온 사람들로,

영어 수준이 다 고만고만하다.


그래도 매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참석한다.

다른 주에서 1시간 넘게 걸려 왔다는 사람,

일주일에 하루 밖에 없는 비번을 이 날짜에 맞춘다는 사람,

실수로 등록을 놓쳐 지난주에 못 와서 너무 아쉬웠다는 사람


처음에는 서로의 모국어가 잔뜩 묻어 있는

반쯤 틀리고 반쯤은 엉망인 영어로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일상을 나누는 게

뭐 그렇게 소중할까 싶었는데  

나도 몇 번 참여해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이 공간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행기가 뜨고 지는 하늘을 볼 때 무심결에 떠오르는

우리 집은 어젯밤 몸을 뉘인 곳이 아니다.


다들 집이 그립다.

집이 그리워 지하철로, 버스로 장바구니를 이고 지어가며

자기네 나라 식재료를 파는 마트를 찾아다닌다.

집이 그리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입에서 튀어나오는

모국어를 또 역시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는

동향의 사람을 찾는다.


English Converstion hour는

집이 그리운 사람들의 모임이다.

집이 그리운 사람들끼리 모여

집의 음식과 집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만난 인연과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이 이방의 세계에도 새로운 집이 지어지길 기도하며


그런 우리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 같은 작품을

MOMA에서 만났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멕시칸 이민 2세대 작가

Joey terrill의 1981년도 작품  

Chicanos Invade New York Series

3편으로 구성된 작품 중에 첫 번째, 세 번째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Making tortillas in SOHO : 좌측] ,  [Searching for Burritos :우측]

첫 번째 작품 Making tortillas in SOHO

뉴욕에 와서 토르티야를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찾다 찾다 내가 만든다는 작가의 설명에

엊그제 밤늦게까지 김치 담그는 동영상을 찾아 눈이 뻘게진 내 모습이 떠오른다.

뉴욕 마트에서 사 먹는 김치는 라면 끓일 때나 제격이더라.


세 번째 작품 Searching for Burritos

이 놈의 뉴욕이라는 동네는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아이스크림 차는 돌아다니는데,

부리또는 못 사 먹는다는 작가의 한(?)이 가득 담겼다.

(원망스레 하늘을 쳐다보는 노란색 옷의 남자 뒤편으로 아이스크림 차가 그려져 있다.)

81년에는 힘들었겠지만,

2023년의 뉴욕에서는 부리또는 발에 치인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흔해졌으니,

이미 한풀이 충분히 하셨겠지


뭔가 심각하고 장중한 이국의 언어와 표현으로 어렵기만 한

MOMA의 현대미술 작품들 사이에

Conversation hour에서 나눴던 우리의 정서가 그대로

캔버스에 담긴 그의 작품을 보니

꼭 교복쟁이였을 때, 유독 공부하기 싫어했던 친구 놈이

공책에다 그린 시덥지 않은

그러나 너무나 내가 좋아했던 만화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 연배의 게이 멕시코계 미국인 작가에게

나 혼자만의 One-side 우정이 쌓인다.


우리는 모두 집이 그립다.

그러나 나처럼 집이 그리운 너가 있어서

오늘 하루도 외롭지 않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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