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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옥 Jan 15. 2024

홀로라는 두려움

   홀로 살 거란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탓인지 항상 주위에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기 조치했다. 갑자기 몰아닥친 불안한 현실을 끌고, 아니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현실을 파악 조차 하지 못했다, TV 소리를 최대한 올리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남들은 쉬운 일이 나에겐 힘이 들까? 지금 당장은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생각과 전쟁하다 잠이 살포시 들었나 보다, 온몸에 열이 나고 돌아 누우니 어지러움에 머리가 빙 돌았다. 아찔한 생각과 함께 드디어 이렇게 아무도 없이 홀로 죽어 가나보다, 무서움과 극도의 불안이 업습해왔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나....... 난 너무 건강해 코로나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혼자되었다고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다니...... 억지로 온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사방이 빙 돌면서 중심을 잃어 마사지 기계에 머리를 크게 부딪치면서 쓰러졌다. 그 뒤는 기억이 없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해님이 창문에 걸 터 있었다. 살아는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는 깨어 질듯이 아팠고 일어설 수도 없어 그냥 그대로 누운 채 눈물만 하염없이 볼을 타고 귀를 달래고 있었다. 나이는 저물고 있는데 왜 이 나이까지 나를 버려두었을까? 볼과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팠고 어지러움이 자세만 바꾸면 계속되어 그냥 있었다. 죽음은 소리소문도 없이 살짝 오길 바라는 내 마음이 지금 이 시간은 아니겠지. 시간 흐름은 조금씩 용기를 주기 시작했다. 어지러워도 일어나야 뭔가를 할 수 있으니 일단 마사지 기계를 잡고 일어섰다,

   겨우 발을 움직여 거울 앞에선 나는 악 소리와 함께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이 퉁퉁 부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픔보다 망가진 얼굴이 더 문제였다. 댄스 강사인데 이 얼굴로 어떻게...... 병원도 가야 하는데...... 큰일이 추가되었다. 여자라서일까 얼굴이 너무 부어 있어 밖에도 나갈 수가 없었다. 난 평소 시도 여자로 태어나면 다시 들어간다고 말할 정도로 여자의 불리함과 불편함에 힘들어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일터엔 갈 수도 없었고 대충 준비를 하고 일단 병원부터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리저리 진찰을 하면서 질문이 많았다. 혈압이 떨어지지 않으니 걱정이 많은 얼굴이다. 어지럼증은 "이석증"이라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혈압약과 현기증 약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목 같았다. 살아가는 것 맞는 것이겠지. 점점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내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체 그냥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온 순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꽉 막혀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끝없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마음 한 가닥이라도 위로 올려 보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 우울증이라고 하는 이름일 것이다. 빨리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 가방을 겨우 찾아 어두운 거리를 무작정 운전대를 움직였다. 근처에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들어간 곳이 마트였다. 아는 얼굴은 없지만 사람 냄새가 나를 반겼다. 가까이에 마트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계속 이런 상황이 된다면 안될 텐데 무슨 대책이 필요했다. 한인 타운이라 식당가도 많고 주점도 있지만 누구도 불러 낼 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상해서이다. 멀리서 보이는 탁구장이 갑자기 크게 보이면서 아 저기다 생각에 바로 달려갔다. 탁구장엔 외국 손님이 대부분이었지만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그곳은 11시까지 있을 수가 있었다. 집에 들어가 잠만 자면 되는 것이다.

    일단 탁구장에 등록을 하고 나니 파트너가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떠 오르지 않았다. 일하고 댄스하고 다른 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서 아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 도시에서 이사를 와서 더욱더 그럴 수도 있다. 여기는 대부분이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사람을 사귈 기회가 많지 않다. 시도를 해보았지만 시간이 안 맞아 실패했다, 남편이 떠나자마자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교회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무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향하고 새파란 가을 하늘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감싸 행복한 마음과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아름다운 교회가 눈앞에 나타나니 조금 두려웠다. 입구에서 망설이다 발길을 옮겨 슬며시 들어가 맨 뒷좌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안심이 되었다.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상태를 아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 나이 동안 뭘 하고 살아왔다 말인가? 모르는 찬송가를 들으면서 이방인이 되어 목사님 설교를 듣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나와 더불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마음이 편안 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게 힘드니 금요일 밤 기도에 참석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많은 교인들이 밤늦은 시간인데도 기도를 하고 계셨다. 아침 기도와 분위기가 달랐다. 기도 하는 방법도 모르지만 점점 마음이 편안해 나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떠 올라지면서 살아온 날에 후회 들이 온통 머릿속에 꽉 차 올라 나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얼굴이 먼저 떠 오르고 그들에게 내가 할 도리를 다 못한 점에 미안함과 죄책감에 용서를 구하고 구했다. 점점 밤은 깊어 가고 어디선가 흐느껴 우는 소리와 기도의 강도가 높아지고 눈물은 어느새 피눈물로 온몸에 달라붙어 살을 애고 전율로 죽을 것 같은 통곡이...... 삶의 후회와 번뇌에 살아야 할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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