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도 봄이었다

봄소풍 그 시절의 기억

by 김정숙

봄소풍을 간다니, 괜히 마음이 들뜨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학교 앞 느티나무에도 연둣빛 잎사귀가 올라오고, 교실 창문 너머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우리는 벌써부터 도시락 걱정, 옷 걱정, 간식 걱정으로 하루가 짧았다.


그날 따라 나는 유난히 언니의 꽃무늬 항아리 치마가 예뻐 보였다.

내 옷장엔 봄에 어울릴 만한 예쁜 치마 하나 없던 어린 마음에, 언니 몰래 그 치마를 꺼냈다.

허리가 좀 컸지만, 옷핀 하나로 야무지게 여미고 거울 앞에 섰다.

조금은 길고 펄럭이는 그 치마를 입은 나는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으쓱했다.

엄마는 눈치 채고도 모른 척 웃으셨고, 언니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냥 한숨 한번 쉬고 말았다.


돗자리를 펴고, 김밥을 나눠 먹고, 풀밭을 뒹굴며 하늘을 바라보던 그 봄날.

햇살은 눈부셨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퍼졌다.

그리고 그 치마 끝자락은 바람결에 살랑거리며 나의 소풍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날 아침, 엄마는 야윈 허리에 분홍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계셨다.

머리엔 살짝 물기 있는 봄쑥 향이 맴돌았고, 손에는 참기름을 듬뿍 바른 송편이 들려 있었다.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께 송편을 드리러 오셨다.

당신은 늘 자식이 가는 길을 조용히 함께 걸어주셨고,

우리는 그 마음을 다 알지 못한 채 너무도 당연히 받아 안았다.


소풍이 끝나갈 무렵, 학교 앞엔 아이스크림 장수가 나타났다.

“아이스께끼! 하나에 백 원!”

시간이 갈수록 외침이 바뀌었다.

“백 원에 두 개! 백 원에 세 개!”

학생들은 점점 장수 곁에 몰려들어 원을 그리고 외쳤다.

“더 싸게요! 네 개요!”


나는 아이스크림 생각에 정신이 팔렸다.

어느새 몸은 치마가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 틈에서 밀고 밀렸다.

“얘야, 너 치마 내려갔어.”

누군가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세상에나, 치마가 허리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그대로 울어버릴 뻔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날의 창피함마저도 봄 햇살 속에 녹아 있다.

그저 아이였고, 그저 봄이었다.

꽃무늬 치마도, 참기름 송편도, 백 원짜리 아이스께끼도.

모두 그 시절, 내가 살았던 계절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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