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1

검은 원피스의 계절

by CE Lee

겨울, 검은 옷을 입을 일이 많아지다.


2024년이 하루 하고도 몇 시간 남지 않은 12월 30일 밤이었다. 퇴근한 남편이 “카톡 확인해봐.”라고 했다. 서둘러 가족 대화방을 열었더니 남편 사촌누나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이 남겨져 있었다. 언니는 우리 부부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기에 이런 소식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장례식장에 갈 일이 자주 없었던 나는 겨울에 입을 검정 옷이 없었다. 얇지만 검은 원피스를 겨우 찾아 두었다. 크리스마스라 붙였던 열 손가락 위 빨간 네일 팁을 보자 조금 전까지 연말이라고 들떠서 즐거워했던 게 언니에게 미안했다. 손톱을 단정히 하고 남편의 어두운 색 양복도 꺼내두고, 다음날 아이들이 등교하면 바로 집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과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은 말없이 운전을 했고, 어색한 공기에 나는 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심해야 하는 점은 없는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보다야 조문 경험이 많았던 남편이라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잃은 마음이 쉽게 괜찮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빈소를 찾느라 전광판을 보게 되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 사이에 젊은 언니의 사진을 보자마자 난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언니의 남편분과 20대의 두 형제에게 맞절을 하는데 둘째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직 저렇게 어린데 이제 엄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식당으로 와 다른 가족들을 만났다. 한참 어린 누이를 먼저 보낸 사촌 오빠는 우리랑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수시로 눈물을 훔쳤다. 귀한 딸을 앞세운 아흔의 노부모에게는 차마 부고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어떻게 해야 충격을 덜 받으실 수 있을까 의견을 나누며 자리를 지키다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따뜻한 검정 원피스를 주문했다. 왠지 까만 겨울 옷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았다. 난 두려워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음악도. 말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달리는 차 속에서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여러 번 겪으면 익숙해질까?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 날은, 정말 오랜만에 계획했던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생각이 많았지만, 이번 휴일이 아니면 방학 내내 여행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여행지는 부산이었다. 부산까지 가는 길은 차로 편도 세 시간이 넘는 거리라 우리는 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빈소에 다시 찾은 다른 가족에게 중간 중간 연락하며 함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 했다. 모처럼만의 여행길이었지만 내 마음도 즐겁기만 할 리 없었다. 자주 연락하며 지내온 사이는 아니었지만, 만날 때마다 살갑게 대해주던 언니였기에, 불쑥 불쑥 생각이 났다. 목적지인 기장에 도착해 체크 인을 하고 남편과 둘이 리조트 앞 바다를 거닐었다. 일몰 시간이 가까워오자 핑크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져 너무 예쁜 하늘로 변했다. 나도 모르게 “언니는 이제 이 예쁜 하늘도 다시 못 보네.”라는 말이 나왔다. 너무 젊은 나이에 간 언니에게 자꾸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K에게 전화가 왔다. S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의 인연인지라, S의 부모님과는 뵐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여행지에서 나아졌던 나의 기분은 다시 저 아래로 꺼졌다. K는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한다며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난 지금 부산이라 따로 가겠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우리는 바로 전화를 끊지 못하고 잠시 전화를 붙들고 침묵을 지켰다. K와 나는 둘 다 눈물이 많은 편이라 평소에 S에게 종종 핀잔을 들었던 터였다. K는 “둘이 같이 가면 괜히 애만 더 울리지. 다행이다. 따로 가자.”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남편에게 부고 소식을 전하고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또 눈믈을 쏟았다. ‘이렇게 하루만에 또 장례식장에 가야한다니. S 어머니 얼굴은 어떻게 보지? S는 어떻게 위로하지? 이게 위로가 될 일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 속을 휘젓고 다녔다.


1박 2일의 여행은 짧았지만 길었다. 아이들을 집에 내려주고는 옷만 갈아입고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난 정말 울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울어서 S나 S의 엄마를 울리기는 싫었다. 안 그래도 힘들텐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가는 내내 부러 남편에게 아무 이야기나 던졌다. 장례식장이 10km 남은 지점이었다. “여보, 장례식장에 몇 번 가봤어? 여러 번 가면 익숙해져?” 난 갑자기 남편이 어떤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남편의 대답을 듣기도 전, 난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남편은 “왜 벌써 울어. 아직 도착하려면 많이 남았어.”라며 우문현답으로 나를 달랬다. 사실 남편의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익숙해진다고 믿고 싶었다. 난 한참을 훌쩍이다 울음을 그쳤고 주차장에 차가 섰을 때에는 완전히 진정되어 있었다.


빈소에 들어가자마자 S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자 울컥해 하셨지만 손을 꼭 잡아드리고, 남편과 함께 S의 아빠 영정 사진에 절을 했다. 여자는 왼손이 위, 두 번 절. 상주를 보고 한 번 맞절. S와 눈이 마주쳤지만 난 눈에 힘을 주고 눈물을 참았다. 식당으로 들어섰는데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시끌시끌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스럽게도 난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S도, S의 남편도, 왔다갔다 하며 거들어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고 S가 당장은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어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S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많이 추웠다. 남편 옆에 꼭 붙으며 울지도 않다니 어른이 다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문한지 사흘도 되지 않아 나의 검정 원피스가 도착했다. 어느 정도 도톰하고 단정해서 쌀쌀한 날씨에 입고 장례식장에 가기에 적당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앞으로 이 원피스를 몇 번이나 입을까. 몇 번을 입고 나면 비로소 무덤덤하게, 진짜 어른처럼, 슬픔을 잘 다룰 수 있을까. 그렇지만 미리부터 생각하고 겁내지 않기로 했다. 닥치면 제대로 대처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어른이 되는 일은 녹록치 않다. 그래도 어렵다고, 하기 싫다고 피한다면 그건 진정한 어른이 아니니까. 매 해 나이만 늘어나는 사람이 아닌, ‘어른(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슬픔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