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을 정리하던 날
우리 집에는 2012년부터 함께한 물건이 있었다. 무려 3층에 침실, 거실, 부엌, 화장실, 다락방까지 없는 공간이 없고 높이도 150센티에 이르는 아주 커다란 인형의 집. 큰 마음먹고 아이들을 위해,라고 쓰고 사실은 내 욕심에 구입했던 이 꿈의 집은, 무려 13년 간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이제는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버린 딸아이들은 더 이상 인형의 집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 처분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되었지만, 정이 들어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는 않았고, 너무나 멀쩡해서 그냥 버릴 수도 없었다.
엊그제 엘리베이터에서 전에도 몇 번 인사를 나눴던, 어린 딸을 둔 같은 동 아줌마에게 드디어 용기를 내어 물었다. “혹시 인형의 집 필요하세요?” “있으면 좋죠. 아이가 잘 가지고 놀 것 같아요.” 연락처를 교환하고 집으로 돌아와 인형의 집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내고 필요하시면 가지고 가라고 했더니 곧 주말에 가지러 오겠다는 답이 왔다. 연락을 받은 나는 인형의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인형의 집에서 물건을 싹 꺼내고 난 뒤, 까맣게 묻어 나오는 먼지가 없어질 때까지 이곳저곳 닦고 또 닦았다. 깨끗하게 골대만 남은 텅 빈 인형의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처음 인형의 집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순간이 생각났다. 인형의 집은 반제품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남편은 두 시간은 족히 걸려 집을 조립했다. 나는 밤늦게까지 집 곳곳에 작은 가구들을 채웠다. 다음 날 아침 인형의 집을 발견한 아이들은 너무도 좋아하며 거의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부터 인형의 집을 향한 아이들의 애정은 한동안 식을 줄을 몰랐다.
아이들은 신데렐라 이야기도, 백설공주 이야기도, 책에서 읽은 다른 이야기들도 인형의 집을 배경으로 펼쳐냈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상황도 만들어내 역할극을 하며 놀곤 했다. 인형의 집은 꽤 큰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이들이 재미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할 때였다. 너무 큰 사이즈 때문에 옮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기어이 새 집으로도 그 인형의 집을 가지고 와 복도의 한편을 내주었다. 이사 후에도 인형의 집은 우리와 함께 10년이란 시간을 더 지냈다. 인형의 집 3층에 인형을 두려면 깽깽이 발을 들어야 했던 아이들의 키는 인형의 집을 넘어섰다. 재잘대며 인형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이제 오며 가며 물건들을 두는 수납장 용도로만 인형의 집을 쓸 뿐이었다.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한다. “진짜 재밌게 놀았는데..” “추억이 정말 많았는데..” 미니어처 가구들을 한데 모으고, 인형들도 박스에 가지런히 넣었다. 자꾸만 인형의 인형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올랐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도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전면 사진을 한 장 찍고 아이들에게도 보내줬다.
“딩동” 15층 아줌마가 인형의 집을 가지러 왔다. 예상보다 큰 인형의 집에 놀란 아줌마는 남편을 불러서야 겨우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인형의 집이 빠지자 그 자리가 휑했다. 거실이 갑자기 좀 넓어 보인다며 아이들과 농담을 하며 섭섭한 마음을 달래는데 문자가 왔다. “아이들이 인형의 집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네요.” 15층 아줌마가 보내준 사진에는 정말 인형의 집 앞에 앉아 인형을 하나씩 들고 있는 아이 둘의 뒷모습이 있었다.
이제는 새로 들일 물건보다 떠나보낼 물건이 더 많아졌다. 손에 익고 눈에 익은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추억을 꾹꾹 눌러 담아 보내고, 그 자리에 남은 빈 공간을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어른이 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비운다고 그 물건에 담긴 시간과 추억까지 비우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