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2

나만의 터전, 나만의 길

by CE Lee

퇴근 후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방학 중에는 늘 마음이 급하다.

오후 반나절 출근하는 파트 타이머이건만, 엄마 역할도 소홀하기 싫은 나는 늘 동동거린다.

출근 전, 분명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갔는데, 간식도 꺼내어 먹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다 준비해 두고 갔는데도, 부엌은 난장판이다.


반쯤 먹고 남아 면발이 퉁퉁 불은 채 눌어붙은 냄비, 덜어 먹은 그릇, 먹다 남은 밥이 담긴 공기, 딱딱하게 음식물이 굳어 있는 수저, 컵 너덧 개. 버리지 않은 라면 봉투, 수프 껍질과 아일랜드 상판에 말라붙어버린 달걀 껍데기까지. 한숨이 나온다.


배에서는 꼬르르륵, 너무도 허기가 지는데 때마침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도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설거짓거리를 한쪽으로 모으고는 빠른 속도로 저녁을 준비한다.

아이에게 간신히 밥을 차려주고 나니, 밥이고 뭐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있고 싶다.

원래 쌓여있던 그릇들에, 요리하고 생긴 용기들까지 뻥튀기된 설거지 양에 난 전의를 상실한다.


한숨 돌리나 했더니,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월패드에서 친절하게도 남편의 차가 지하주차정에서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그제야 핸드폰을 보니, 남편이 출발한다며, 내가 전화를 안 받아 톡을 남긴다고, 저녁을 아직 못 먹었단다.

다시 국을 데우고 반찬을 덜고, 12시 반에 점심을 먹고 늦은 저녁까지 일하다 왔을 공복의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인다.


남편은 부엌 언저리에서 배고프다는 소리도, 언제 준비되냐, 채근도 없이 기다린다.

그 모습에 내 손길은 더 분주해진다.

남편까지 식사를 하고 나면 이제 부엌은 정말 전쟁터다.

지금 이 일을 할 사람은 나뿐이다.

이럴 때는 정공법 밖에 답이 없다. 속전속결.

좋아하는 플레이 리스트를 소리 높여 재생하고, 앞치마를 질끈 묶는다.

정리 시작!!

식기 세척기 사용이 가능한 식기들은 먼저 정리해서 차곡차곡 기계 안에 넣는다.

세척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나머지 식기들을 설거지해서 깨끗한 행주 위에 엎어 둔다.

음식물 쓰레기와 음식물이 묻은 쓰레기도 분리해서 봉투에 넣는다.

식탁, 아일랜드, 전기 레인지 상판까지 다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면 정말 끝이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남은 음식물과 설거짓거리로 엉망진창이었던 부엌이 이렇게 다시 반짝이다니.

이게 바로 마법인가 싶다.

이 모든 일을 직접 한 당사자에게조차 마법 같으니 다른 가족들에게는 어떨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정리되는지 알려나.

이렇게 부엌 마감을 하며, 내일 아침에는 깔끔한 부엌을 마주할 수 있겠다는 뿌듯함, 오늘도 할 일을 다 마쳤다는 개운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른이 되면, 왼팔은 차창에, 오른손으로는 핸들을 여유롭게 움직이며 운전하고, 원하는 때에는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커피를 들고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출근한다거나,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한다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멋진 레스토랑에서 외식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수면 위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엄청나게 발장구를 치듯, 그런 모습을 위해 해야 하는 구체적인 노력과 일상의 반복적인 수고로움을 어린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작년 12월 말 우연히 손흥민 선수의 동영상을 보았다. 그 골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인 코너킥이었다. 맨유와 3:3으로 동점이었던 토트넘은, 손흥민의 결승 골로 우승하게 되었다.

골키퍼의 두 팔 너머로 날아간 공은 골대 먼 쪽 그물에 그대로 꽂혔다.

당시 기대 득점 값은 0.00. 축구에 문외한이 내가 봐도 정말 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득점이었다.

수많은 관중이 손흥민 선수를 향해 환호했고, 손흥민 선수도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그런 멋진 슛을 날릴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한 한 사람의 피, 땀, 눈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얼마나 노력했을까.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이제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결과 그 자체와 함께, 그 이면도 헤아리게 되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어른들은 하루를 견뎌낸다.

종종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고, 지루한 일상의 자질구레하지만, 필요한 일들을 반복한다.

그렇게 아무도 대신해주는 이 없는 자기 일을 기어이 해내며 매일을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

박완서 선생님의 [호미]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 나이,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니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밋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것을 큰 복으로 알고 있다.’


나만의 작은 터전에서 때로는 내던져 버리고 싶은 호밋자루를 꼭 쥐고, 김도 매고, 꽃들도 가꾸며, 지지부진한 일상을 지켜내며,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