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3

You are what you eat!

by CE Lee

요즘 들어 작은 글씨가 자주 아른거렸다.

핸드폰에서 대화를 주고받거나, 사용 설명서의 작은 글씨를 읽어야 할 때면, 한참을 들여다봐야 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40대 후반이니 노안이 올 수도 있는 나이긴 하지만, 내가 노안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에 좋은 당근을 매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먹기에는 당근 라페만 한 메뉴가 없을 것 같아 당근 라페를 대량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히 주문한 제주 흙 당근을 깨끗이 닦아 채를 썰기 시작했다.

너무 두꺼우면 당근을 통째로 씹는 느낌이고 너무 얇으면 씹기도 전에 입안에서 부서지는 게 싫어, 신중히 적당한 굵기로 썰었다.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주황빛 당근 채가 수북하게 쌓이는 걸 보니, 뭔가 산뜻하고 벌써 눈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먼저 소금을 뿌리고 뒤적여 당근의 숨을 죽였다.

거기에 상큼한 맛을 책임질 레몬즙, 씨 겨자와 달콤함을 담당하는 올리고당, 당근의 날 맛을 눌러주는 마늘 가루와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 마구 섞어준다.

간을 보니, 적당히 간간하고 상큼하다.

이제 하루 숙성하고 내일 아침부터 듬뿍듬뿍 먹어 내 눈 건강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며, 꽉 차게 당근 라페가 담긴 스테인리스 통을 냉장고 한편에 넣는다.



재작년인가에는 건강 검진에서 장상피화생 진단을 받게 되었다.

병명을 이야기해 주시며 “위 상태가 60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언제라도 암이 될 수 있는 상태이니 반드시 주기적으로 검사하도록 하세요.”라고 냉정하게 덧붙이던 의사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시기는 하지만, 자주 과음하는 편도 아니고, 식습관도 좋다고 자부했는데 60대 위라니. 집에 돌아와 위에 좋다는 음식을 검색해 보니 양배추와 마가 나왔다.

다음 위내시경 검사를 하고 조금 나아진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나의 양배추와 마 섭취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난 다행히 양배추샐러드를 좋아했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1:1로 섞은 아주 고전적인 소스에 비벼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건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간장 소스를 선택했다. 간장, 물, 꿀, 식초나 레몬즙을 모두 1:1:1:1의 비율로 섞어주면 어떤 채소도 맛있게 듬뿍 먹을 수 있는 마법 소스로 변신한다.

양배추를 이렇게 생으로 샐러드를 해서 먹기도 했지만, 살짝 쪄서 먹으면 설포라판이라는 성분이 더 활성화된다고 하여 양배추 찜도 참 자주 먹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으면 찜기에 양배추를 얹고 뚜껑을 닫은 채 5분 정도 더 끓이다 불을 끄고 2분 뜸을 들이면 딱 알맞은 식감의 찜이 완성된다.

마가 좋다고는 하지만 특유의 찐득찐득한 점성이 그렇게 입에 맞지는 않아, 바나나나 사과와 같이 갈아 주스를 해서 먹기도 했고, 동글동글 썰어 기름에 노릇하게 구워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의 좋은 성분이 열에 의해 쉽게 파괴된다는 것을 안 이후에는 마보다는 양배추를 더 자주 먹었다.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문장을 봤다.

잘 알면서도,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입에 맛난 음식을 찾았던 나였다.

특별히 편식하지 않았지만, 당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먹지 않을 수 있다면 그 편을 선호했다. 양배추도 마찬가지다.

물론 있으면 먹지만, 굳이 찾아 먹을 식재료는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건강을 위해 스스로 좋아할 만한 조리법을 찾아 당근이며 양배추를 먹고 있다니.

게다가 좋은 성분은 더 극대화할 방법까지 찾고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지.



몸에 좋다는 식재료를 찾고 조리법을 검색하다 문득 국민학교 때 일이 기억났다.

엄마가 정성껏 손질한 수삼을 잘라 꿀에 재 통에 넣어두시면 아빠는 아침마다 음~ 하시며 커다랗게 한 숟가락씩 절임을 드시곤 하셨던 일.

너무 맛있게 드셔서 아빠한테 한 입 얻어먹었는데, 달콤한 꿀맛이 사라지자마자 훅 들어온 씁쓸한 수삼 맛에, 난 뱉지도 못하고 씹지도 못하고 울상을 지었었다.

도대체 이 맛없는 걸 어떻게 그렇게 매일 맛나게 드셨던 건지 그 나이의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것이 어른의 맛이었다는 것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어른으로서, 우리는 아프지 않도록 건강을 챙겨야 한다.

그 가장 쉬운 방법이, 건강한 음식을 우리 몸에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꿀에 절인 수삼을 맛있게 드시던 그 시절 아빠보다, 지금의 내 나이가 더 많다.

입에 착 붙는 감칠맛보다 몸에 좋은 건강한 맛을 더 좋아해야만 하는 나이.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몸에 좋고 맛있는 식재료를 찾고 요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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