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치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 우리 가족은 매 주말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랑 동생은 고속버스 타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이유는 버스에 오르기 전 엄마가 늘 사 주시던 뚱뚱한 바나나 우유 때문이었다.
빨대를 꽂고 볼이 홀쭉해지도록 크게 한 모금 들이켜면, 달착지근한 우유가 입 안 가득 달달함을 남기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렇게 몇 번만 홀짝이고 나면 바닥을 드러내던 바나나 우유가 얼마나 야속하던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고 부자가 되면 배가 터질 만큼 바나나 우유를 잔뜩 사 먹자고 동생과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남편에게 있어 커피 땅콩은 나에게 있어 바나나 우유와 같은 존재였다.
남편은 땅콩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달콤하면서도 커피 맛이 나는 오돌토돌 코팅이 씌워진 커피 땅콩이 그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남편은 나중에 성공하면 원 없이 커피 땅콩을 먹으리라 다짐했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편의점에 갈 때면 가끔 뚱뚱한 바나나 우유와 커피 땅콩을 사다 먹으며 “우리 성공했네!”라며 킬킬댄다.
언젠가부터 팬이었던 박완서 선생님, 은유 작가, 작년 말부터 좋아하게 된 조해진, 정세랑 작가의 책을 조금씩 사 모으고 있다.
머지않아 아이들이 독립해, 아이들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이 텅 비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 책은 많기도 하고 오래된 책들도 많아서 전부 다 구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오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으로만 책장을 꽉꽉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책을 구매하며 책 탑을 쌓고 있는데 차곡차곡 탑을 이루어가는 책더미를 볼 때면 참 짜릿하고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
커다란 다발이 아니더라도 그저 서너 송이의 생화라도 식탁에 꽂아 두는 걸 좋아한다.
전에는 특별한 기념일에나 남편에게 반강제적으로 선물 받는 형식을 취해 꽃을 얻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일-이주에 한번 그때그때 주머니 사정에 따라 어느 날은 조금 풍성한 한 묶음을, 어느 날은 가볍게 한 두 송이의 꽃을 사 와 집에 있는 화병 중 어울리는 화병을 신중하게 골라 꽃을 꽂곤 한다.
어른이 되어 보니 반복적인 일상을 견뎌내기 힘들고 지치는 날들도 많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기어코 내가 해야 할 일이 매일이다. 게다가 그 일들의 무게와 양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참 고단하다 싶은 날이면 바나나 우유나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 탑을 떠올리거나 식탁 위를 환하게 만들어 주는 꽃을 바라본다.
그래도 어른이라 누릴 수 있는 나의 작은 사치는 화려하지도 않고 돈이 많이 들지도 않지만, 나의 생활에 활력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작은 사치를 알맞게 누리며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른으로써 어떤 호사를 누려 볼 수 있으려나. 어른만이 부릴 수 있는 특권을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