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5

건망증과 노화 사이

by CE Lee


오늘도 시간이 간당간당하다.

노트북 가방을 메고 이것저것 넣은 가방도 챙겨 들고 양어깨가 무겁게 서둘러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다행히 주차 자리가 기억이 난다. 차에 다가섰는데도 손잡이에 불이 안 들어온다.

이런, 또 차키를 두고 온 모양이다. 가방은 무겁고 시간은 촉박하지만 어쩌겠나.

다시 집으로 뛰어올라가며 머릿속으로는 어제 차키를 넣어둔 손가방을 어디에 두었나 기억을 더듬는다.

‘찾았다!’ 다시 잽싸게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통에 담아 다용도실에 둔다.

설거지 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다용도실 문을 연다.

다용도실에 들어서니 시야에 견과류를 담아둔 통이 보인다.

’출출한데 이거나 먹을까?‘ 견과류를 한 봉지 집어 들고 다용도실에서 나와 부엌 개수대 앞에 선다.

‘맞다, 나 음식물 쓰레기통 가지러 간 거였지?’


며칠 전부터 청소기가 이상하다. 먼지가 잘 흡입되지가 않는 것 같다.

'뭐가 또 막혔나?'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들여다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 통 안에 먼지 빨아들이는 필터 같은 게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지?'

한참을 들여다보다 부품의 유무에 확신이 서지 않던 나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린다.

퇴근한 남편에게 보여주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게 맞다.

"먼지 비우면서 먼지 필터도 통째로 같이 버린 거 아니야?"

"아니, 먼지 필터가 나름 큰데 내가 설마 그걸 버렸겠어?"

민망해서 나름 항변했지만 사실 버렸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버렸으니까 없을 테지.






아이들 치과 예약 시간 까먹기, 인터넷으로 장을 본 줄 알았지만 안 한 일, 자동차 검사일 지나치기,

양말 꺼내 두고 다시 또 꺼낸 경우, 외출할 때마다 서너 번에 한 번은 차키, 핸드폰, 지갑 두고 와서 다시 집으로 가는 것.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해야 할 일들이나 기억해야 할 일들을 일정에 메모하고 캘린더에도 입력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카카오 톡 '나와의 채팅'에까지 스크롤이 한참을 내려가게 이어지는 메모를 입력해 둔다.

그런데도 가끔 중요한 일정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약속을 깨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20대부터 건망증이 있었고 덜렁거리는 성격이었던 지라, 지금의 깜빡증이 건망증 때문인지 노화 때문인지 확실한 구분이 어렵다. 또 이쯤 되면, 깜빡증의 이유가 건망증이어도, 나이 때문이어도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서글픈데 이렇게 잊는 일이 자주 생기는 것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눈앞에 닥친 일들에 집중하며 다른 일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도, 감정도, 또 이런 창피함도 적당히 잊으며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일들은 최대한 기억하려 애쓰고, 잊어도 될 만한 일들은 어느 정도 잊으며, 남은 생을 살아도 좋으리라.




과연 이 글을 썼던 것은 깜빡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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