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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지난 가을 Museum San을 추억하며

순도 99%의 마음으로

by CE Lee


처음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와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그림 자체보다도 그 그림을 둘러싼 수많은 인파가 너무나 놀라웠다. 또 실물이 교과서나 책에서 자주 봤던 모나리자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도 적잖이 실망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 그림을 보러 온 거지? 정말 이 그림이 그렇게까지 유명하다고?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보는 내내 다양한 형식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했지만, 그 작품들을 보며 느꼈던 솔직한 심정은 처음 모나리자를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미술 작품과의 첫 만남이었다.


모나리자에 냉소적이었던 여고생은 이제는 미술관 나들이에 설레는 중년이 되었다.

여전히 예술은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에 속한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과연 작품 속 작가의 의도를 과연 제대로 이해했나, 의문이 들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관심 있는 작가의 전시회에 기웃거리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돌아보며 소소하게 행복을 느낀다.



그런 나에게 뮤지엄 산은 보물 같은 장소이다.

혼자 여행하게 되면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으로 손꼽았고, 행복하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기분 전환 겸 적당히 운전해서 갈 거리에 자리 잡고 있고 주차가 쉽다는 점도,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강점과 더불어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계절과 작가가 바뀔 때마다 매번 다른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기에 여러 번 방문해도 싫증날 새 없이 늘 새로웠다.



지난 11월의 햇살이 눈부시던 날, 함께하면 흐뭇한 사람들과 뮤지엄 산에 걸음 했다.

‘좋다’라는 한 단어로 밖에 그 모든 감정들을 뭉뚱그려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사실은 예술에 문외한인 모습이 들킬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따사로운 햇볕,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아치웨이로 향하다 보니 그런 초조함은 금세 잊혔다.


동글동글 까만 돌이 잔뜩 깔린 워터 가든 수면 위로

빨간 아치웨이가, 울긋불긋 나뭇잎들이,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우리가 비쳤다.

양옆 물을 가로지르고 머리 위의 아치웨이를 지나쳐 우리는 뮤지엄 산 내부로 들어갔다.

종이 박물관에 전시된 고품들을 보며 쓰임새나 만드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도 나눴고 우리나라 고유한지의 제작 방식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시청했다.

IMG_1343.JPG?type=w1600 [Archway] 1997, Alexander Liberman



미술관 대부분은 우고 론디노네라는 스위스의 현대 미술가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지난 방문에서 가장 잊을 수 없던 장면은 오른쪽에서 다양한 색의 유리창을 통과하여 들어온 알록달록한 빛이 천장과, 천장에 달린 시계들과, 바닥을 지나 왼편 세 개의 창문(각각 평화, 무의미, 고요라는 이름의 작품)에 닿던 모습이었다.

초침도, 분침도 없었고 숫자들도 보통 시계에서 볼 수 있는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지 않아 처음에는 시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시계 역시 모두 색이 달랐는데,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천장에는 색이 담긴 빛이 워터가든의 물결을 따라 너울거렸고 그 순간이 참 아름다워서 사진뿐 아니라 마음에도 오래도록 담아두리라 다짐했다.

IMG_1308.jpg?type=w1600 [Love Invents Us] 1999, [Dark Orange, Yellow, Red, Purple, and Turquiose Clock] 2023, Ugo Rondinone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와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라는 두 작품은, 뮤지엄 산이 위치한 ‘원주’에 사는 아이들과 우고 론디노네 작가가 협업했다.

모두 2,000장이 넘는 아이들의 그림으로 꾸며진 작품은 허리를 굽혀 들어간 안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는데 예상처럼 뻔하지 않았다.

한장 한장의 그림으로도, 모두 합쳐진 커다란 한 덩어리로도 멋져서 그 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해는 흰 도화지에, 달은 검은 도화지에 그려져 느낌이 대조적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아이의 이름을 빼곡하게 써넣어 작가로 소개했다는 점도 신선했고 배려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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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공간에 유리로 만든 말과 일몰과 일출을 우고 론디노네만의 색감으로 단순화한 매티턱 작품이 공존했다.

푸른 계열의 열한 마리 유리 말은 전시장 군데군데에 설치되어 있어서 조심스레 피해가며 관람해야 했다.

각각의 말들에게는 세계 각지 바다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황해가 있어서 반가웠다.

물이 담긴 것 같은 모습은 투명한 수평선으로 말을 가로지르며 바다 풍경을 담아낸 것이라는 설명을 읽었는데,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작품에 표현할 수 있는 건지, 보고 있으면서도 상상이 실체화된 결과물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IMG_1336.JPG?type=w1600 [Horse] [Mattituck] 2023 Ugo Rondinone



Burn to Shine이라는 주제로 탄생한 우노 론디노네의 작품에 흠뻑 빠져 구경하다 보니 몇 시간이 몇 분처럼 지나갔다. 날 설레게 하고 미소 짓게 하는 많은 작품을 봤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 뒷모습조차 작품들과 함께 사진 속 피사체로 담아줄 만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보낸 시간이 소중했다.

작품에 집중하고 싶어 어른들끼리의 나들이를 계획했음에도, 이렇게 좋을 때면 불쑥불쑥 아이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인가 싶었다.


아이들을 둔 엄마로서, 한계 없는 상상력으로 예술품을 표현한 예술가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작가의 성장 배경과 그 부모의 육아관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작가가 이렇게 자유로운 묘사가 가능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방법도 알고 싶어졌다.


우고 론디노네가 작품에 담고자 했던 ‘삶과 죽음의 공존, 삶과 자연의 순환,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이로써 형성되는 인간 존재와 경험’을 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예술을 향한 순도 99%의 열정과, 우리 아이도 저런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도하는 불순물 1%의 엄마 마음이, 그저 그 호사로운 시간 동안 내가 느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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