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만 보여요
절세미인은 아니지만 생김새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미 결혼해서 남편도 있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다.
평범한 외모지만, 길쭉길쭉한 손가락과 엄마를 닮은 눈은 한 번씩 예쁘다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의상과 잘 어울리는 네일 아트나, 한 듯 안 한 듯 눈을 돋보이게 하는 속눈썹 펌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일상이다.
지하의 한 귀퉁이 네일 숍. 내 4년 직장 생활에서 받은 상당 부분의 월급을 소비하게 만든 곳.
사무실에서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멀었던 이곳에 어떻게 처음 발걸음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딱히 문이 없는 개방형 매장이었고 가로로 긴 테이블이 있어 안쪽에는 네일 아티스트가 앉는 자리가, 바깥쪽으로는 손님이 앉는 의자가 일렬로 있었다. 선반에는 색색의 매니큐어가 빼곡하게 들어찼었다.
문이 없어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부터 손님을 반갑게 맞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자리에 앉으면 따뜻하거나 시원한 음료를 주고 안부를 물으며 손톱의 매니큐어를 지워준다.
깨끗하게 지우고 나면 일주일 만에 생긴 손톱 거스름을 제거한다. 가끔 더 좋은 서비스를 선택하면 꾹꾹 시원하게 손을 눌러주는 마사지를 받거나 손등을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파라핀에 손을 푹 담글 수도 있었다.
손톱 주변이 깔끔해지면 손톱의 모양과 길이를 다듬고 원하는 색과 해보고 싶던 디자인을 선택한다.
아티스트가 정성 들여 매니큐어를 다 바르고 나도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완전히 마르지 않으면 쉽게 찍혀 반들반들했던 손톱에 순식간에 자국이 남기 때문이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드라이어로 바짝 말리고 나면 좋은 향이 나는 오일을 듬뿍 발라준다.
손톱 끝 부분만 색을 칠하는 프렌치 네일, 빛나는 스톤으로 장식하기, 열 손가락 다 다른 색으로 발라보기.
매일 명품 가방을 바꿔 들고 비싼 디자이너 의상을 입을 수는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내가 원하는 색이나 디자인으로 내 열 손가락과 발가락에 변화를 줄 수는 있었다.
사회 초년생이 그나마 소소하게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고나 할까. 사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는 네일 아트를 사수하고 싶었다.
20대 어린 여성이 사회에서 쉽게 받을 수 없던 대접을 네일을 받으며 누릴 수 있어 좋았고 그렇게라도 고된 회사 생활을 일부나마 보상받고 싶었던 것 같다.
손끝을 꾸미던 20대의 작은 사치는, 이제 눈매를 돋보이게 하는 40대의 섬세한 호사로 이어졌다. 평소 화장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제대로 화장할 줄을 모른다. 색조 화장은 하지 않더라도 눈매는 또렷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우연히 속눈썹 펌을 정성 들여해 주는 곳을 찾게 되었다.
샵에 들어서면 예쁜 슬리퍼가 놓여 있다.
슬리퍼를 신고 안으로 들어서면, 여름이면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고, 겨울이면 침대가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잔잔한 음악은 너무 빠르지도 많이 느리지도 않다.
30분이면 시술이 끝나는 곳들도 많은데 거의 1시간을 들여 펌을 해주고 영양제를 듬뿍 올려주는 원장님의 정성에 그 시간 동안만큼은 부잣집 마나님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한 달에 한번, 성심껏 돌봐주는 다른 이의 손길에 나를 맡기는 기분은 참으로 호사롭다.
반짝반짝 손톱도, 둥글게 말아 올린 속눈썹도, 그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나의 어느 작은 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알고 있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나의 일부가, 오늘도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조금 더 예뻐 보이게 해 줄 비밀이라는 것을.
기분에 따라 손톱 색을 바꾸고 늘 속눈썹을 아찔하게 말아 올린, 혼자만의 즐거움 놓치지 않는 그런 호호 할머니로 나이 들어갈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그래서 아직도 이런 자잘한 기쁨을 포기하지 않고 누리고 싶은가 보다.
일상의 단조로움, 매일 해내야 하는 일들에 치일 때, 어른이 되어서야 누리는 자잘한 사치로 삶의 활력을 줄 수 있어 좋다. 이런 호사가 있어, 어른으로 사는 충분한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