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에 구멍이 났다
"끼이이이이익!" 20대의 어느 화창한 주말, 기분 좋게 친구와 만나러 나갔던 나는 삼성동의 어느 골목에서 차에 치어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아픔보다도 부끄러움이 컸을 만큼, 나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차가 정말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석에서 사색이 되어 뛰처 나온 중년의 아주머니는 "어머 아가씨, 미안해요. 내가 정말 무슨 정신인지 모르겠네,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어서 내가 자꾸 이래."
거의 스무 해도 더 된 그 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차에 친 일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여서기도 했지만, 당시의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과 '운전자가 낸 사고' 사이의 인과 관계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응급실에서 많이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둘째와 다른 지역에 갔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속도 제한 따위는 무시하고 마구 액셀을 밟고 싶었지만, 아이를 태우고 있어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빠가 있는 서울 병원으로 가는 두 시간은 정말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시간이었다. 결국 난 아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장례를 치루게 되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자꾸 눈물이 났다. 살아있는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명치에 구멍이 난 듯 허전했다. 가슴을 꽝꽝 치고 싶은 날도 있었다.
울면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늘 다니던 길이라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다 큰 아이의 병원 진료 때문에 나름 장거리 운전에 나서게 되었다. 신호 대기에 정차해 주변을 살펴보다 크게 당황했다. 내 차가 버스 전용 도로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어느새 아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가면, 일반 차가 다니는 도로와 버스 전용 차로 사이가 구조물로 분리되어 돌아나올 길이 아예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쩔 줄 몰라하는 내 옆에서 큰 아이는 조용히 "엄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천천히 해."라고 했다. 다행히 빨간 신호등에 모든 차량이 정지해 있는 상황이라, 어찌어찌 우회전을 해서 버스 전용 도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사히 일반 차량 도로로 돌아간 나는 스무 해 전 그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서너 번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나도 언젠가 겪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장례를 경험하면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헤아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를 보내며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아무리 반복해도 괜찮아지지 않을 일도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슬프고 힘든 것을 극복하고 괜찮아지길 기대하기보다, 어쩌면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그냥 견디고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여전히 아빠를 떠올리면 그립고 서글프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마음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더 이상 감정은 나를 휩쓸어 무너뜨리는 커다란 파도가 아니다. 세차게 몰아치는 대신, 쓸려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얕은 바다의 잔잔한 파도처럼 반복되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로 찾아온다.
다시 스무 해 전 사고가 있었던 날로 돌아간다면, 운전자 아주머니를 아무말 없이 따뜻하게 안아드릴 수 텐데.
각자의 구멍을 끌어 안고 묵묵히 살아내는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