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기다
올여름부터는 휴가를 갈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방학인데도-방학이라서- 주말까지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바삐 움직이는 아이들 때문이다.
지난여름, 우리는 스쿠버 다이빙의 매력에 빠졌다. 고요한 물속에서 숨을 고르며 바라보던 아름다운 광경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한번 떠나고 싶었다.
설 연휴가 길지는 않았지만 필리핀 정도의 거리라면 충분히 다녀올 법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항공권을 검색하고, 리조트를 들여다보며 예약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들뜬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전 퇴근한 남편은 설 연휴 중 하루 이틀은 출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위약금이 꽤 되는데, 장모님이랑 아이들 데리고 넷이서 다녀오면 어때?”
전 같으면 단번에 오케이를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을 때는 어른이 두 명 더 있다는 생각에 든든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쩐지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다.
게다가 엄마는 물을 무서워한다. 엄마를 혼자 리조트에 두고, 또는 배에 남겨두고 우리끼리 스쿠버 다이빙을 갈 수는 없다. 만약 스쿠버 다이빙을 간다 해도, 남편도 없이 모르는 사람들과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는 일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그 순간 엄마도, 아이들도 지켜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Nothing to Lose〉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닉은 아내의 외도를 오해한 채 인생이 끝났다고 믿고, 자신을 털려던 강도와 한 팀이 된다. 그는 “I have nothing to lose!(난 더 이상 잃을 게 없어)”를 외치며 무모한 선택들을 이어간다.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이제 나는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이 되었다.
잃을 게 많아 두렵다는 것은,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쉬이 했을 선택 앞에서도 오래 망설인다. 그 망설임은 겁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킬 것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엄마를 챙기기 위해 전보다 부지런히 집안일을 돌보고, 체력을 키우려고 애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 나를 돌아보고,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쁜 모습은 조금씩이라도 고쳐 나간다.
그 모든 시간과 정성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가 무너지지 않아야 엄마도, 아이들도, 남편도 잘 돌보고, 내가 지키고 싶은 이 일상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겼고, 그 때문에 두려워졌다. 그러나 두려움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나를 돌본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