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카페 O

by CE Lee

눈길 닿는 곳마다 카페가 보인다. 이쯤 되면 ‘카페 공화국’도 대한민국의 별명일 수 있겠다.

2024년 6월 기준, 우리나라의 카페 수는 10만 개를 돌파했다고 한다. 골목마다 보이는 편의점 수의 두 배라고 하니 카페는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물론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카페에 가고 싶은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일 테니.

그리 크지 않은 세종시에서도 수많은 카페가 문을 열고 닫는다. 세종 중심가에서 면, 읍 단위의 소재지로 조금만 차를 달려 나가면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도 여기저기 생겼다.

인기가 많은 카페나 뷰가 좋은 곳은 한 번씩 가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카페들을 뒤로 하고 결국 내가 틈만 나면 찾아드는 카페는 나의 모든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동네 카페 O이다.



언젠가부터 세종 시립 도서관을 찾을 때면 도서관 옆 건물 1층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불이 켜져 있는 듯 꺼져 있는 듯, 식당인지 술집인지 어딘가 모호해 보이는 정체성에 그냥 지나치곤 했었다.

그러다 시립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친구가 “카페 O 가봤어? 항상 생화를 두고 원두도 직접 볶아. 사람들 목소리가 높아지면 바로 주의를 줘서, 책 읽기나 조용히 있고 싶을 때 가면 좋아. 딱 니 취향일 것 같은데.”하며 귀띔해 주길래 그곳을 찾게 되었다.



‘여기다!’ 문을 여는 순간 느껴지는 진한 커피 향과 계피향이 섞인 달달한 쿠키 냄새에 나는 이미 설레기 시작했다. 나무 인테리어와 천장에서 내려온 노란 빛의 전등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모든 분위기에 나는 단번에 카페 O에 반했다.

‘안녕하세요!’ 따뜻한 인사에 나도 꾸벅 답하고 커피 원두를 볶는 공간, 카운터와 커피 기계, 원두, 식기가 가득 수납된 장을 지나쳐 매장에 들어섰다. 네 명씩 앉을 수 있는 직사각형 테이블 세네 개와, 가운데에 생화를 주욱 꽂아둔 긴 탁자가 보였다.

탁자 위 8-10개의 화병들 속 각기 다른 꽃들이 자기 앞에 앉으라며 나에게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섰다. 일반 커피는 신 맛, 고소한 맛, 디카페인 원두 세 가지 중 고를 수 있었고, 드립 커피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원두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메뉴에 쓰여진 여러가지 커피 종류를 읽어내려가며 난 카페 O 사장님이 커피에 진심이구나,, 느꼈다.

산미가 있는 진한 라떼를 추천해 달라는 내 요청에 사장님은 플랫 화이트를 추천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하는 설명과 함께 도장이 찍힌 누런 쿠폰을 건네셨다. 열 개의 도장을 모으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했다.



자리에 앉아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곧 한 손에는 커피가 담긴 잔을, 한 손에는 스팀우유가 든 작은 주전자를 들은 사장님이 내 앞에 섰다. 그러더니 커피가 담긴 잔에 우유를 쪼로로록 따라주시는 게 아닌가. 두 번째로 카페 O에 반한 순간이었다.

“많이 뜨겁지 않으니 한 모금 드셔 보세요.” 말씀해주시는 대로 한 모금을 마시니 진실의 “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딱 내가 원하는 진하고 산미가 가득한 라떼였다.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며 난 조용히 결심했다. 카페 O의 단골이 되기로.



적당한 온기를 머금은 친절함, 나무 톤 인테리어와 따뜻한 조명, 늘 화병마다 가득한 생화, 내가 좋아하는 원두를 기억해주는 직원분, 매장에 흐르는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그 무엇보다도 나의 입에 너무나 완벽한 커피를 대접받는 느낌으로 마실 수 있다는 호사스러움.

그 어느 것 하나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딱 나의 취향인 공간, 카페 O.

에세이스트 김혼비가 [아무튼, 술]이란 책에서 “말도 안 되게 좋아하는 걸 말이 되게 해보려고 이런저런 갖다 붙일 이유들을 뒤적이기도 한다.”라고 한 표현이 떠오른다.

난 카페 O가 좋은 이유를 열거하고 있지만, 그저 카페 O가 말도 안 되게 마음에 드는 것이 전부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선택에 까다로워지는 내 자신이 못마땅하곤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기준이 뚜렷해지는 것일 뿐이라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없이 생기고 없어지는 카페들 사이에서 오늘도 카페 O는 다행히 건재하다. 획일적인 프랜차이즈가 아닌 확실한 색이 있는 카페 O의 생존은 왠지 평범한 나에게 희망을 준다. 좀 더 너답게 지내도 된다고, 너만의 취향을 갖고 있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라고, 그래도 된다고. 카페 O는 나에게 그런 힘을 준다.

오늘도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내 발길은 카페 O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느끼고 누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카페 O가 오래도록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나에게도 행복을 허락해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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