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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향 Apr 26. 2024

탐라국을 탐하다.

(성읍민속마을, 다랑쉬오름••••)

 4월 25일 목요일 제주살이 25일 . 남은 기간 동안 제주 동쪽 편을 훑기로 했다. [성읍민속마을]로 가서 제주민속생활상을 엿보기로 했다.


  가는 도중 [바움]이라는 커피박물관이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피와 숭늉을 하루 한잔씩해야 하는 남편인지라 핸들을 돌렸다. 큰 도로에서 오솔길로 바뀌어 깊고 조용한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3층 건물로 이루어진 카페 겸 커피기구들을 전시해 놓았다. 퇴직하면 카페를 운영할 생각에 대학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야간반 등록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나는, 로스팅 기구부터 간단한 휴대용 커피잔까지 관심있게 살펴보았다. 이제 그 자격증은 그야말로 장롱자격증이다. 아주 편한 캡슐커피를 주문하여 척척 내려 마시는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있어 보이게 해외직구를 한다. 마음에 드는 잔이 있어 사려고 하니 남편이 말린다. 이제 사지 말고 비우는 노후생활철학을 실천 중이다. 사실 커피잔이 문제가 아니라 맛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들이 중요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은은하게 피어올라 내 코를 자극하는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과 내 마음을 마구 퍼주어도 아깝지 않은  앞에 앉은 누군가의 그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평정상태이더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야외에 마련된 차탁에서 숲의 향기와 커피의 향을 누릴까 싶었는데 옆에서  미화원이 빗자루로 소리 내며  나뭇잎을 퍽퍽 쓰는 것이 아닌가? 세상 살다 살다 손님옆에서 그렇게 먼지 내며 청소하는 업소는 처음 겪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청소하는 분이 우리 또래 나이 든 분이라고 이해하자고 했다. 우리는 씁쓰레한 마음이 들어서 일어섰다.


  오늘 목적지 [성읍민속마을]에 도착했다. 향토문화해설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허가된 집에 들어서며 구수한 억양과 알아듣기 쉬운 설명으로 서민들의 일상모습을 안내해 주었다. 입구에는 흑돼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지저분한 똥돼지가 살고 있는 모습과 사람들의 인분을 진짜 먹었다며 설명하였는데 어제 마트에서 사다가 숙소 냉장고에 넣어둔 흑돼지 삼겹살을 먹을 수 있을까? 싶었으나 우리는 지저분했던 그 모습 잊어버리고 오늘 저녁에 있게 구워 먹었다. 남자는 큰 방문으로 들어가고 여자는 낮고 좁은 문으로 드나들었다는 설명에 나도 모르게 "아이고" 했더니 해설사"여자들이 그렇게 살았어요." 했다. 제주도에서는 같이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하면 아들 부부에게 안채를 내어주고 부모들은 바깥채로 물러난다고 하였다. 같은 집에서 살아도 식사도 따로 하고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한다고 하였다. 그 사고방식은 좋다고 반응했다. 그래서 고부갈등 같은 것은 전혀 다고 하였다. 요즘 고부갈등이 많은 것을 볼 때 이런 좋은 모습의 생활상을 배웠으면 좋겠다. 물독, 장독대, 빛가리개, 아기 침대 등 서민들의 생활도구를 구경하고 나왔다. 동네 전체를 돌았다.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해야 하니까 마음대로 주택개조를 못하는 등 불편할 것 같았으나 마을 전체가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오래된 마을이라 동네를 지키는 나무들도 수백 년이 되어 거대한 그늘을 만들고 지킴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을 향교도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었다. 고가 안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대부분 화산돌로 두꺼운 벽과 으로 이루어졌고 역시 담장은 검은 화산이었다. 집집마다 은 텃밭이 있고 제주 고사리를 널어놓은 모습도 보이고 판매도 하고 있었다. 향토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어떤 메뉴가 있을지 궁금했으나 이른 사시간이라 우리는 다음 코스로 핸들을 돌렸다.


30여분을 [다랑쉬오름]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급경사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힘들 것 같아서 어제 가파도에서 산 보리꽈배기를 차에서 먹었다. 달달하고 구수한 것이 힘이 나게 다. 스틱까지 준비하고 오르는데 진짜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남편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날다람쥐처럼 오르고 있었다. 몇몇 여자분들은 기하고 뒤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계단으로 이루어진 은 너무 힘들고 싫었다. 야속한 남편의 뒷모습이지만 래도 69세의 나이에도 당당하게 오르는 모습에 나도 깡을 발휘했다. 30여 분을 헉헉거리며 오르고보니 아, 완전 반전의 광경을 펼쳐 주었다. 수목에 가려 보이지 않던 오름의 정상에는 움푹 파인 분화구로 인하여  아슬아슬한 높이 저 아래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 포기하고 안 올라왔더라면 이런 호사스러움을 모르고 갔겠구나 싶어서 여기를 선택한 남편에게 엄지 척을 하였다.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희뿌연 안개를 허리에 두른 한라산이 저만치서 내려보고 있고 높고 낮은 수십 개의 오름이 빙 둘러있다. 내려오려니 아쉬웠다. 이런 멋진 것들을 두고 이제 곧 육지로 가야 하나 싶었다.


시 출발지로 내려온 우리는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아끈다랑쉬오름]으로 가보자고 했다. 아무도 오르지 않는 외로운 오름이라 했다. 야트막한 경사에 잡목으로 길이 잘 안 보였지만 헤치고 오르니 고사리가 천지에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얕은 분화구에는 억새가 누런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시간인지라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해녀박물관]에 들렀다.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까지 붐볐지만 실내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제주를 더 탐색하고 나니 제주가 탐이 나고 제주에 눌러앉아 살고 싶은 생각이 났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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