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화면에 대학 동기 남자 이름이 뜨길래 머뭇거리다가 지난주에 우리 지역 동기모임을 했는데 와 또 전화하노 싶어서 받으니 대뜸 내 스케줄을 물었다. 11월은 팔도 아프고 당뇨초기 단계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도 생각나서 에어로폰 레슨도 안 가고 좀 쉬고 있는 중이었다.
"야! 백수인 너나 나나 뭐 다르겠노?별일 없는데? 와 뭔 일 있나?"
그렇게 하여 우리는 7명이 모였다. 뭐 [럭셔리 크루]라고 했다. 대구를 비롯하여 도내 시에 흩어진 대학 친구들이다. 조금은 낯을 가리는 내가 구성원이 누구인지 물으니 다행히 함께 테니스를 치던 친구들이었다. 목적지는 무주 덕유산에 갔다가 대전에서 1박 하고 대청호 오백 리 길을 걷는 것이었다. 물론 차는 9인승 승합차를 빌렸다. 1박 2일 동안 운전과 총무 역할까지 하겠다며 지원봉사를 자처하는 친구의 행동을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운전하는 친구와 내가 사는 P시에서 대구에 가서 친구들을 태우고 다시 k시에 가서 마지막 친구를 태웠다. 그냥 간단하게 몸만 오라고 하여 그냥 갔었던 나는, 종류별로 간식 1인별로 봉지를 만들어온 친구와 다양한 과일을 가지고 온 친구 등으로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아, 이게 아닌데? 나도 준비라 하면 철저하게 하는 성격인데 갑자기 초콜릿과자한 봉지를 들고 간 내가 자꾸 미안해하니 뭘 가득 가지고 온 자기들이 약속 위반이란다. 녀석들은 그렇게 또 친구를 감싸준다. 미리 애창곡 3 곡을 7명에게서 받아 저장해 와서는 차 안에서 틀어주는데 어찌 그리 다 비슷한 내용들의 노래들일까? 분명 같이 늙어가는 것이다.
웃고 떠들다 무주 덕유산에 도착하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하여 인공눈 만들기에 적합한지 하얀 눈을 만들고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 다시 나무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을 밟으며 1614m 정상에 오르니 덕이 많이 쌓여 덕유산이라는 표지석이 보였다. 제발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남은 인생길에는 덕을 많이 쌓아두고 가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었다. 표지석에 적힌 문구 하나에도 나를 반성한다. 과연 지금 현재, 나는 덕을 쌓으며 살고는 있는가? 7명을 태우고 운전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운전을자처하고 찬구들 좋아하는 노래 미리 저장해서 차 안에서 들려주고 1박 2일의 일정을 아주 꼼꼼하게 계획하여 단톡방에던져주며 신나게 해 주면서도 덤덤한 표정의친구를 산정상에서 바라보았다. 그래, 사방팔방 다 보이는이 덕유산도 멋지지만 뒷모습 보이며 저 멀리 산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친구가 참 멋져 보였다. 다시 내려와 온갖 포즈를 다하며 사진을 찍고 나니 어느덧 어둑해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숙소를 예약한 대전으로 향했다.
7개의 방을 미리 정한 호텔은 아담하고 작았지만 깨끗하고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짐을 풀고 숙소 앞삼겹살집에서 식사와막걸리 각각한잔을곁들이고 나오니 날씨가 엄청 추웠다. 직장 재직 시 출장 외에 이렇게 친구들과 단체로 와서 1박 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에라 모르겠다. 평소 같으면 아주 세세하게 남편에게 보고를 하던 나는 이번에는 애써 참았다. 집에서 평소에 불면의 밤을 자주 보내던 나는 막걸리 한잔 탓인지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 식사를 하러 호텔 1층 식당에 내려가니 우리 팀외에는 대부분 노트북을켜두고 일을 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는출장 중인 사람들이었다. 6만 원대의 숙박료가 저렴하면서도조식까지 주던 토요00호텔이었다. 필요 없이 크기만 한 호텔방이 아니라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어울리게 적당한 방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우리는 그 옛날 가족들과 함께 와본 적이 있는 대통령의 휴양지 청남대를둘러보고 대청호 오백 리 길로 향했다. 벌써 점심시간이라 호수언저리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멋진 경치와 함께 거한 식사를 대접받고 걸었다. 대청호에 비친 주변 가을단풍 오색나무들과 하늘 구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살다 보니 이런 호사스러운 여행을 하네 싶었다. 어쩌면 번개로 실시한 여행이라 그것도 허물없이 터놓고 지내는 40년 지기 대학동기들과 함께해서 편하고 정겨운 시간들이었던 같다. 또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종알거리는60대 중반의 친구들뒷모습을 바라보니 서서히 등이 굽어가는 것 같았다. 더 휘어지지는 말아야 할 텐데 싶었지만 어디세월이 우리를 가만두겠나?
다시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향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다음에 또 번개여행을 추진하자고 했다. 전체학생 회장했던 친구는 아직도 당차고 똑똑하다. 그 친구를K시에서 내려주고 다시 대구에 몇몇 친구들이 내리고 운전기사인 친구와 나는다시 P시에 도착했다. 빵빵 웃음소리를 터트리던 친구들의 뒷모습과 바람에 휘날려 감출 수 없던 흰머리가 자꾸 생각난다. 어이, 나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었네 싶다. 다시 힘을 내자. 다음에 또 있을 번개 모임을 기다리며.